문화재 현장에서 참말로 곤혹스런 말이다. 전통과 원형이 있느냐?
없다.
함에도 없는 전통과 원형을 찾아가느라 모두가 골을 싸맨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자.
공주 마곡사 영산전. 별칭이 천불전(千佛殿)인 데서 엿보듯이 이곳에는 천불을 안치했다. 경주산 곱돌로 만든 작은 석상 천여구를 안치했다. 천불은 중앙불단을 중심으로 양측면으로 단을 마련한 ㄷ자형 불단에 안치됐다.
보수 이전 영산전. 왼편이 중앙불단. 오른쪽이 동편 불단이다.
보수 이전 영산전 천불 안치 양상. 측면에도 불단을 마련한 점을 주시하라.
한데 공주시가 근자에 이걸 보수하면서 측면 불단을 없앴다. 이유는 이랬다. 측면 불단을 조사해보니 근대기에, 베니어 합판으로 보축됐다는 이유였다. 원형을 훼손했다 해서 뜯어제낀 것이다. 그리하여 천불단은 중앙불단만 남게 되고, 양쪽 측면은 없앴다.
없애니 깨끗해 보여서 좋기는 하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천불을 다 수용할 공간이 없는 중앙불단에다가 측단 불상까지 쑤셔 박는 바람에 콩나물 시루가 되고 말았다.
묻는다.
근대기에 필요성에 따라 보축한 양측면 불단은 원형과 관계가 없으므로 없애야 할 군더더기인가? 영산전을 생명체로 본다면 이 역시 살아야 할 가치는 있지 아니한가?
보수 이후 영산전. 측면 불단을 없애고 그에 안치한 불상들을 중앙불단에 쑤셔박다시피했다.
근대기 보축이라 해서 뜯어제끼면 영산전은 성장 혹은 변화를 멈춰버리고 만다. 지금 불상을 제작해 봉안하고 싶은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작금 우리 문화재 업계를 배회하는 '원형 고수주의'라는 유령은 정말로 문화재라는 이유로 해당 문화재를 박제화하고 특정한 과거의 시점으로 고정해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전통과 원형. 그것이 설혹 있다고 해도 시대와 호흡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꼴이 벌어지고 나니, 저 영산전에 이젠 천불을 만들어 안치하는 일을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봐라. 어디다 불상을 놓는단 말인가?
근대기 베니어 합판이라 해서 없앨 것이 아니라, 외려 베니어 합판이 꼴뵈기 싫다면 다른 방식으로 측면 불단을 보강해야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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