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에는
1770년대까지도 노비 사역이 완전히 청산 안 되었다.
아래에 노비 10여명씩 두고 사역하는 양반들이 이때까지도 드물지 않다.
물론 이전 시기보다는 노비 사역 규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둘째. 우리나라 호적은 1800년대 중반 들어가면 노비사역이 거의 사라진다.
이때가 되면 3-5명 단위의 소농으로 나라 전체가 재편되는 듯 하다.
이 부분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세째. 그런데 문제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
이 시기 호적이 개판이다.
필자는 족보를 가지고 대조해봤는데
대체로 1/5도 호적에 안 올라온 것 같다.
이처럼 엉망인 호적이 19세기 중반되면 좀 나아지는데
이 시점이 되면 거의 모든 가구가 유학이 된다..
따라서 노비사역이 중심이 된 시대와 소농으로 완전 재편되는 시기 사이에는
호적이 개판인 시기가 중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대체로 이 시기는 정조~순조 연간에 해당한다.
넷째, 이것은 이 포스팅에서 제일 중요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호적은 이거만 가지고는 연구 못한다.
반대로 우리나라 족보는 이거만 들고 연구하는 사람은 바보다
둘 다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을 대조하면서 보면 의외의 성과가 많이 나온다.
호적이 어느 부분이 부실한지,
족보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떠오르게 된다.
필자 생각에는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 연구에서
족보를 반드시 함께 대조하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성촌 위주로 그 마을 거주자의 족보를 확보해서
족보와 호적을 함께 대조하면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렇게 시험삼아 해봤는데 의외의 사실을 좀 알 수 있었던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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