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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죽은 사람은 되살려 낼 수가 없다.
일본이 헤이안시대, 10세기 초반에 처음 장원정리령을 반포한 후
12세기 중엽까지 무려 열 번을 넘게 계속 사전 혁파, 공전 회복을 주창하며
덴노가 장원정리령을 쏟아 냈지만
한 번도 성공 못하고
일본사는 사전과 장원을 둘러메고 나름의 발전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의 경우도
후삼국의 동란은 사전의 성장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전에 의한 공전의 붕괴를 막으며 등장한 것이 전시과체제였는데
이 전시과체제가 다시 무너지고 흔들리면서 고려말이 되면서 사전과 농장으로 특징지어지는 토지소유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던 바,
이것이 14세기 후반 과전법체제와 사전혁파에 의해 일거에 부정되고 토지공전제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야말로 죽은 자식을 되살려낸 사건이었다고 할만하며
이 과전법 혁명은 실행 초기에는 아무도 이것이 종국에는 조선사회에 무기력과 경제적 파탄을 부를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과전법 체제와 사전개혁은 20세기 좌파 토지개혁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눈은 일본의 장원정리령의 시각을 통해 보는 쪽이 훨씬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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