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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념이 원래 인문학에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학문과 지식, 인문적 통찰과 관련된 모든 유물과 유산들은
이러한 사회 전체에 설계된 지식의 구조 아래에서 생산되어 나온 것이라는 점은
필자가 보기에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금속활자, 왕조실록, 조선 후기의 문집 목판, 과거제, 팔만대장경 등은
한국 고유의 지식의 구조 아래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보급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체의 유물들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에마키, 중세소설, 군담소설, 에도시대의 목판 출판, 우키요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체의 지식관련 산물들은 일본 사회의 지식의 생산, 보급, 소비하는 구조 아래에서
전체를 조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에마키 하나를 놓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얼마나 단편적인가!
지식의 구조가 무대 뒤에 놓인 본체라면
금속활자와 에마키 등등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라 할 것이다.
배우에만 집중하고 무대뒤에서 움직이는 그 연극의 설계자를 통찰하지 못한다면
어찌 연극을 봤다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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