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에 즈음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그것이 위치한 공주 송산리고분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그 일환으로 그곳 29호분을 재발굴하고는 노출했으니, 그 성과를 연구소가 오늘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했으니
그에 즈음해 오늘 나는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적었다.
노출은 내 꿈이었고 무령왕릉 오십주년을 앞두고 공개하고 싶었다.
다행히 부여연구소도 완전히 나랑 뜻이 같았다.
다음 꿈이 있다.
무령왕릉 내부를 열고야 만다.
송산리29호분이 무령왕릉과 송산리6호분, 그리고 5호분이 삼각형 편대를 이룬 바로 그곳 지하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이 분야 몇몇 전공자는 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잠자는 그것을 어찌해야 하는지 아무도 고민을 하지 않았고, 어찌할 거냐 물으니 글쎄 뭘 어찌하겠느냐는 답변뿐이었다.
이걸 내가 깨부시고 싶었다.
내가 이걸 반드시 노출시키고야 말리라 결심한 계기는 졸저 《직설 무령왕릉》 (메디치미디어, 2016. 4)에서 비롯되었으니, 그에 대한 저간의 사정은 졸저에 충분히 적었으니
다른 무엇보다 무령왕릉 발견자인 김영일 선생과의 인터뷰가 획기를 마련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 역시 그냥 막연히 29호분이 어디갔을까? 하는 정도의 의문뿐이었으니
어쩌다가 그와의 이야기 자리에서 이리로 화제가 옮겨가니, 무령왕릉 발굴 이후 언제인가 그가 송산리고분군 보수공사에 투입되어 작업을 하는 와중에 하필 저 29호분을 노출하고 말았다지 않는가?
발견하고 어찌 했느냐 물으니, 책에서 적었듯이 "어쩌긴 뭘 어째? 도로 묻었뿌찌" 하는 것 아닌가? 노출 결과 드러난 양상을 그는 너무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후환이 두려워 조용히 묻고 말았다면서, 지금도 그 자리 송산리 지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걸 도로 파겠노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으니, 그러면서도 이 지역을 관장하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줄기차게 이걸 파서 노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이 계획은 작년에 본궤도에 올랐으니, 다름 아닌 올해가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인 까닭이었다.
파는 시점이 문제였는데, 연구소에서도 그렇고 나 또한 백제문화제 개최 이전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에 즈음해 발굴현장을 공개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제 이렇게 파낸 무덤을 어찌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럴 적마다 이 분야 고고학도니 하는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있다. 종합정비계획이 어떻고 저떻고 씰데없는 소리가 난무한다.
그딴 거 필요없다. 무슨 종합정비계획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리 나갔다가는 하세월이다. 자다가 봉창을 두들겨도 안 끝난다. 계획잡는데 1년, 공사하는데 1년, 그러다 보면 또 공사기간 하염없이 늘어나고 또 그러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져 무슨 거창한 돔을 씌우는 꼴로 발전하고 만다.
저기에 무슨 돔이 필요한가? 비만 가릴 만한 가림막에다가 배수시설만 있으면 된다. 또 흙이 흘러내리니 어떠니 저떠니 하는 개소리 넘쳐날 것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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