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차순철 선생이 천안 구도리 백제시대 무덤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이 블로그를 통해 전한 적 있다. 이 소식을 보면 한 무덤에서는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곧 검은빛을 내고 표면을 갈아만든 듯하다 해서 검은간토기라 부르는 백제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토기 1점이 발굴됐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외장하드에 보관 중인 과거 사진들을 자주 훑어내려가는데, 휴대폰 뭉치를 뒤지다가 2017년 9월 27일 폰카가 포착한 사진 중에 문제의 저 흑색마연토기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애초엔 기억에 도통 없어 당시 발굴조사단으로 보고서 작성을 위해 그 토기를 보관 중인 백제고도문화재단 출신 심상육 선생한테 이게 뭐냐 기별을 넣었더니
천안 구도리 유적 단독 분구묘墳丘墓 수혈식 석곽竪穴式石槨 출토품으로, 삼각판혁철판갑과 함께 석곽 밖 봉토封土에서 발견됐다. 석곽은 도굴되었다.
고 한다. 심 선생은 근자 뜻한 바 있어 이 기관을 떠났다. 전후 사진들을 보니 해직시절인 그때 나는 능산리 발굴기 원고 관계로 그 집필을 의뢰한 부여 모 기관을 방문했다.
언제나 부여를 찾을 때면 심선생한테 신세를 지곤 했는데, 이때도 들른 김에 이런저런 새로운 발굴성과까지 실견하는 그런 재미를 선사했으니, 그런 친구가 떠났으니 못내 아쉽다.
이 흑색마연은 발굴보고서에는 좀 더 상세한 분석 등이 있을 것으로 보이어니와, 보듯이 똥꾸녕이 뚫리고 바닥 굽쪽에 손상이 심하다.
그렇다면 저 구멍, 그리고 바닥 훼손은 후대 교란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애초 이 무덤을 만들면서 저걸 부러 묻은 백제사람들 소행인가?
당연 빠따로 후자로 보아야 할 듯 싶다.
무덤에 껴묻거리로 넣는 저런 그릇류는 일상용품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부러 깨뜨려 등신을 만드는데 이를 행위를 훼기毁器라 한다.
구멍을 뚫은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하는데, 그에서는 이것이 저승의 용품임을 의미하는 그런 뜻 말고도 혹 혼을 통하게 한다는 그런 맥락까지 있을 수도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안쪽에는 이를 만든 도공의 손길 흔적이 완연하다. 뭐 이걸 만들면서 사랑과 영혼을 읊었을런지도 모른다. 도공 마누라도 그리 예뻤을라나?
그나저나 저리 구멍 나기도 힘들 텐데 말이다. 자칫하면 그릇이 다 깨지는데 이 작은 걸 용케도 구멍을 뚫었다 싶다.
이 각도로 보면 바닥을 벅벅 긁어내다시피 했다는 흔적을 더 완연히 본다.
참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리라구
안쪽과는 달리 겉면은 맨질맨질하다. 열라 물손질을 했나 보다.
고고학 하는 친구들 이런 거 갖고 매양 매달리던데 그거 해서 뭐하니?
물손질을 하건 물레를 썼건 말건 그거 암짝에도 중요하지 않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저걸 어디다 썼을까나 궁구해 보자.
영어로는 흔히 black burnished pottery라 하는 이 흑색마연토기를 어디다 썼을까?
부러 흠집을 낸 걸 보면 순전히 명기明器로만 제작했을 가능성은 낮아지며
그렇다고 주로 무덤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점도 영 켕긴다.
크기도 작고 무엇보다 저 시커먼스가 섬뜩섬뜩한 기분도 들게 하는데, 뭐 백제사람들 미적 감각이 달랐다면 모를까 저들이라고 저 시커먼 것들을 밥상에 내어놓고 사용했겠는가?
흑색마연토기는 암흑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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