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06)
논산 명재고택
술이 익다(酒熟) 첫째
[明] 굴대균(屈大均) / 김영문 選譯評
빚은 술 원액 새로 내와
그 맛이 달콤한데
아이들은 지게미 먹고
아버지는 술 마시네
안타까워라 추수 끝나도
붉은 찰벼 드문지라
포의 선비 더 이상
동쪽 울로 가지 못하네
酒娘新出味如飴, 兒女餔糟父啜醨. 恨絕秋收紅糯少, 白衣無復到東籬.
이런 시를 올리면 틀림없이 어떤 분은 왕조 시절 한가한 유생의 비현실적 신세타령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벼슬할 것 다 한 후 시골로 내려와 고고한 은사인 척 폼을 잡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판하는 분들 대부분도 현재 노동자 농민의 현장에서 동떨어진 삶을 사는 분들이다. 책상 앞에 앉아 관념 속 색깔론에 물들어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자들이 프롤레타리아연 하지 말라고 엄히 추궁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이런 추궁을 한다면 그래도 이해할 만하지만 대개는 부르주아나 프티부르주아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프롤레타리아를 옹호하는 체 한다. 하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편을 든 적은 거의 없다. 늘 양쪽 중간에서 눈치를 보다가 대개 돈과 권력이 있는 쪽으로 빌붙곤 했다. 흥미롭게도 그 입장은 자신들이 비판하는 봉건시대 유생과 거의 다를 바 없으니 이건 무슨 아이러니인가? 1980년대에 민중문학론이 유행할 때 민중이 문학창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강력하게 대두한 바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일부 고고한 지식인들은 지금도 왕조시대의 벼슬아치들에게조차 민중 또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들은 민중문학론 자체를 부정하면서 말이다. 물론 왕조시대 유생들의 가식적 경향을 덮어두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이민위천(以民爲天)’의 민본주의를 정치의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의 허실을 지금 현실로 끌어오는 문제는 또 다른 토론 주제에 속한다. 현재의 논리로 과거의 현상을 재단하여 남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현재에도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비민주적 행태를 일삼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어릴 적 농번기가 되면 우리 집 안방 아랫목에는 늘 술단지에서 술이 괴는 소리가 뽀글뽀글 들리곤 했다. 봉건 조선시대 가장 말기에 태어나신 우리 아버지는 그 술을 드시며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우리도 몰래 술단지에서 그 술 원액을 떠마시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곤 했다. 이 시를 지은 굴대균이 어떤 사람인지는 인터넷에 자세하다.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이 날짜는 알아 뭣에 쓰건디? (1) | 2018.10.22 |
---|---|
몇번이나 다시 올 수 있으려나 (0) | 2018.10.21 |
그대 떠난 이곳 강산은 텅 비어 (0) | 2018.10.20 |
안갯길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종소리 (5) | 2018.10.18 |
사시사철 시름만 주는 나무여 (0) | 2018.10.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