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장께서 자세히 써 주셨기 때문에 간단히 필자의 생각만 보충한다.
1. 필자가 이해하는 바 마한론, 특히 5-6세기의 독립적 정치체 마한론은 현지의 발굴결과 독자성이 보인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남아 있는 문헌과 기왕에 현지에서 보고된 내용 중에 반드시 해명하지 않는 부분이 독립적 정치체 마한을 주장한다면 따라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되는 부분은 "5-6세기"의 독립적 정치체 마한의 부분이다. 당연히 시대가 올라가면 독립적 정치체 마한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가 5-6세기까지도 과연 유지되었겠는가 하는게 문제겠다.
5-6세기까지 마한을 독립적 정치체로 묘사한 문헌 기록은 앞서 김단장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임나일본부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지역에 5-6세기까지 백제와 구별되는 별개의 독립적 정치체가 존재했다는 것은 그 당시 왜의 지속적인 주장이었다. 심지어는 중국에 조공하러 가서까지도 그 주장을 했다.
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3. 5-6세기의 마한론은 이처럼 임나일본부를 끼고 일본 쪽이 전통적으로 설명을 시도하므로, 5-6세기 독립체 마한을 주장할 때 이 부분은 반드시 반론을 펴야 하는 부분이다.
5-6세기 마한론을 입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필자는 본다.
4. 문제는 이 기록 하나면 모르겠는데 현지에서는 5말 6초의 전방후원분이 다수 우리 손으로 발굴 보고 된 바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5말6초에는 현지에서 백제와 구별되는 독자적 문화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전방후원분도 나온다. 그렇다면 백제와 구별되는 정치체 마한을 주장하면 앞서 언급한 문헌의 문제를 반론하기 쉽지 않게 된다.
5. 5-6세기 마한론이 학자적 입장에서 옳다면 이를 고수할 수밖에 없겠다. 아무리 검토해도 5-6세기 독립체 마한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는가.
6. 하지만 5-6세기 독립체 마한은 문화적 독자성만 검토하고 5-6세기 이전의 이 지역 독자적 행보를 그린 문헌을 5-6세기까지 끌어 내려 설명한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위에 설명한 내용 때문이다.
5-6세기 독립체 마한을 입론하는 데는 백제는 물론이고 위에 쓴 일본과의 문헌 및 고고학적 문제도 회피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해명되어야 비로소 입론이 가능하다고 본다.
7. 5-6세기 독립체 마한론은 그 주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위와 같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입론하고자 할 때 가장 위기가 오게 된다. 이런 건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5-6세기 독립체 마한을 주장할 때 이 부분이 반드시 해명되지 않으면 결국 이 주장을 하는 분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학자들도 일본에는 꽤 나오게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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