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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한글학자의 한문서예

by 버블티짱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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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의 한문서예>

한갑수(韓甲洙, 1913-2004), 그 이름을 이 분이 살아계실 때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어느 책 안에서 '한갑수' 석 자를 보았던 적은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이 분을 잘 모른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두산백과>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13년 6월 26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눈메, 왈례(曰禮), 목원(牧原)이다. 1933년 전라북도 고창고보(지금의 고창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주오[中央]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하였다. 1948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어 중앙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54년 미국공군대지휘참모학교를 졸업하였고, 1975년에는 미국 유니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7∼1960년 국회의장 이기붕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1965∼1972년에는 대한일보 전무이사와 논설위원으로 일하였다. 이어 5·16민족상 이사, 민속음악협회 회장, 한글기계화연구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 한국걷기본부 총재, 한글재단 초대 이사장, 매헌민족대학 학장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한글운동은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표준안’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면서 시작하였다. 1948년부터 1980년까지 한글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한글의 보급과 현대화를 위해 힘썼으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운동을 이끌었다. 한글학회 회장, 한글재단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방송과 대중강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45년부터 37년 동안 KBS 라디오 프로그램 ‘바른 말 고운 말’에 출연하여 한글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렸다.

충무무공훈장, 방송문화상과 외솔상, 세계교육재단 평화문화상, 한글발전유공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원본 훈민정음 풀이》 《바른말 고운말 사전》 《국어대사전》 《태극기 해설》 등이 있다. 2004년 11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법대를 나와 성악가가 되고, 군인이 되었다가 정치에 몸을 담았으며, 언론인, 한글학자로 삶을 마쳤으니 경력이 참 파란만장하기도 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유당 정권의 2인자 이기붕(李起鵬, 1896-1960)의 비서실장 이력인데, 그만이 알고 있었을 역사의 뒷이야기는 얼마나 많았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하지만 한갑수의 삶 대부분은 '한글'이 꽉 채우고 있다. 그와 관련이 깊었던 한글학회, 한글재단, 민족문화추진회(지금의 한국고전번역원) 등은 모두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고 알리는 곳이다. 그 자신 40년 가까이 라디오에서 한글 강연을 했다니 참 어지간히도 한글을 아끼고 사랑했던 분이었던 듯 하다. 이런 분들이 있어 현대의 한글이 이만큼 위상을 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갑수 이 분은 궁중에서 봉직하던 내관에게서 글씨를 익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보이는 이분 글씨는 한글이건 한문이건 퍽 얌전하고, 때로는 서툴고 어리숙해 보이는 면이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원숙한 필치를 보여준다(보여주신 소장자께 감사를).

송 아무개라는 분께 1980년 늦겨울 써준 것인데, '설악산인'이라 한 걸 보니 아마 고향(가평에 설악면雪岳面이란 데가 있다) 이름을 호로 땄던가보다. 그러고 보니 한글 호 '눈메'도 마찬가지다.

큰 붓으로 거침없이 소리 성聲에 받아들일 용容, 고요할 정靜 석 자를 내리긋고 가는 붓으로 그 아래 낙관을 얽었다. 흔한 형식은 아닌데 그 날 따라 필흥이 돋았던지 글씨의 배치가 자연스럽고 획이 꿈틀거린다. 만약 한글로 이런 작품을 썼다면 또 어떤 느낌이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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