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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이후엔 아마 이런 풍광을 맛보기는 힘들리라.
전면이 온통 발굴장이기 때문이다.
경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말 여러 번 했다.
이리도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신라시대에도 황복사지가 이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대를 따라 옷을 바꿔 입을 뿐이다.
(2017. 2. 11)
***
이 풍광은 아마 당분간은 볼 수 없다. 발굴현장이 정비되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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