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분야에서 때마다 빈발하는 주장 중 하나가 국보 1호를 교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교체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항용 말하기를 국보 1호가 주는 상징성이 있으므로, 남대문(숭례문)으로는 그 상징성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으니, 한민족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훈민정음으로 바꾸자고 말한다.
실제 이를 교체하기 위한 움직임이 노도怒濤와도 같아, 문화재청이 그에 끌려들어가 이를 위한 설문조사라는 것을 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실제 이를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부의했다가 무산된 일도 있으니, 내 기억에 그런 근자의 가장 가까운 시도가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대에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왼)과 상주본(오른쪽)
이들에게 국보 1호니, 보물 1호니, 사적 1호니 하는 것들은 단순한 행정관리번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도 이제는 필요 없어, 그건 이젠 잘 아니, 그래도 바꾸라고 주장한다. 문화재 민족주의라 이름할 만한 괴물과, 문화재는 자고로 그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 일반의 욕망이 작동한 결과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남대문으로는 쪽팔리니, 그 자랑스런 1호를 예컨대 훈민정음으로 교체한다 치자. 그리하여 무엇을 어찌하려는가? 문화재 줄세우기 하려는가? 그리하여 훈민정음이 1등이고 2등이 석굴암, 3등이 팔만대장경판 뭐 이런 식으로 백미터 달리기 하려는 개수작인가? 그에다가 죽을 맞추려는 문화재청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불탄 상주본
그들이 말하는 국보 1호 훈민정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격이나 있는가? 일언이폐지한다.
훈민정음은 자격 상실이다.
국보 1호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말하는 훈민정음이란 훈민정음과는 하등 관계가 없고, 간송미술관이라는 사립박물관이 소장 중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말한다.
단언한다. 저 해례본이 한글은 아니다.
착각하지마라. 훈민정음 해례본과 한글은 전연 별개다.
훈민정음, 혹은 한글이란 무형유산이다. 무형유산을 유형유산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국보니 보물 사적은 오직 유형문화재에만 해당한다. 그런 유형문화재에만 해당하는 국보 목록에 훈민정음이 들어간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주에서 출현했다가 그 소장자가 내놓지 않는다는 이른바 상주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해서도 한 마디 해둔다.
이 문제는 결국 돈과 소유권 문제인데, 법원에서는 현재 그 소장자가 그것을 소장한 과정이 불법이며, 그런 까닭에 그것은 국고 소유라 판결했다. 그건 그거고, 그것이 무슨 천억원이네 하는 헛소리가 횡행하거니와, 이것도 소위 이 문화재 업계 일부 발을 담근 놈들이 그런 주장을 일삼아 현 사태를 꼬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힘을 보탰으니, 문화재가 아무리 상황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는 특수성을 고려한대도, 그렇다고 해서 상주 해례본이 무슨 천 억원이라는 말인가?
상주본 소장자였다가 법원 판결 등을 통해 그 불법 은닉자가 된 배익기씨
왜 이런 뻥튀기가 나왔는가? 단언커니와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혼동한 까닭이다.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은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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