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현장

행진 중 똥을 싸는 말! 북제北齐 루예 묘娄叡墓 벽화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9. 18.
반응형

 
이는 중국 산서성 태원시太原市에서 발굴된 북제北齐시대 고관대작 루예娄叡라는 사람 무덤 내부 중에서도 동쪽 벽면을 장식한 안마유기도鞍马游骑图라는 프레스코화 전체 장면이라  

주인공 루예娄叡는 태어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570년에 사망했다는 정보가 확인된다. 

북제 조정에서는 출세를 거듭해 무성제武成帝 하청河清 원년, 562년에는 사도司徒가 되고, 하청 3년, 564년에는 태위太尉가 되었으며, 천통天统 2년, 566년에는 대사마大司马가 다시 되고, 그 이듬해 천통 3년에는 태부太傅가 되었다가 무평武平 원년 2월 5일에 거세去世하니 우승상右丞相 겸 삭주자사朔州刺史가 추증되고 무공왕武恭王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이런 그가 묻힌 무덤이니 오죽이나 화려하겠는가?

무덤은 온통 저와 같은 벽화라 안마유기도鞍马游骑图 또한 그것을 장식한 하나라, 저 동쪽 벽면 기마행렬도만 해도 길이 3.25미터, 두께 1.64미터에 달한다. 

세부 몇 장면을 본다. 
 

 
자세히 살피면 어째 좀 띨띨한 듯한 표정이다. 
 

 
말 궁둥이를 봐 주기 바란다. 똥을 싸는 중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말은 개와는 달라서 대소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저때 말이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가려서 쌌겠는가? 나오는 대로 싸질러 댔을 뿐이다. 

이 문제 심각하다. 

저 말똥이 놓인 지점에 말똥가리가 자라기 마련이다. 
 

 
등자 곧 발걸이가 보인다. 

기마 역사에서 등자는 알려지기로는 선비족인가 발명품이다. 

북제는 그 직접 후손이니 당연히, 그리고 이 시대에는 등자가 보편화했으니 있음이 당연하지만 이게 수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렇지를 아니해서 등자가 없었다. 
 

 
저 등자가 들어간 부분 전체를 보면 앞과 같다. 룰루랄라!
 

 
두 사람은 아마 행렬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벽화들은 발굴 뒤 보존문제로 현장에 두지 못하고 다 떼서 산서박물원으로 옮겼다.

근자 이것이 어느 박물관으로 출타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본 듯한데, 혹 이 작품을 보려가려는 사람들은 일정 참고하셨음 싶다. 

그건 그렇고 굳이 저 똥 싸게 장면을 화가가 그려넣은 이유는 뭘까?

벽화 의뢰 측에서 공사 대금 제대로 안줘서? 

저런 장면이 하도 인상적이었기에 굳이 그려넣지 않았겠는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