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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홍여하(1620-1674)가 본 황희 정승 영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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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목재 홍여하(1620-1674)라는 분이>


조선 초기 재상 황희(1363-1452)의 초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감회를 이렇게 글로 읊어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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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웃는 얼굴로 편안하였기에, 아이들 다투어 수염 잡아당기고 품에 안겨 먹을 것 구하였으니 마치 제 아버지 어머니에게 장난치듯 놀았다네.

인끈 드리우고 홀을 단정히 하여 조정의 윗자리에 서면, 백관들은 두려워 떨고 조정에서는 단정하게 그를 위해 엄숙히 하는 모습이 마치 예법을 지닌 집안의 자제들이 아버지나 형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듯 했네. 


비유컨대 신룡神龍이 깊은 못 진흙탕에 서려 있어, 물고기 자라 도마뱀이 친하게 지내는 듯하면서 업신여기다가, 어느덧 홀연 변화하면, 풍우와 벼락이 쳐 산골짜기를 휘감고 황하와 바다를 쓸어버려도, 신룡의 기량을 헤아릴 수 없는 것 같았네.  

이는 그가 당시에는 혁혁한 명성이 없었으나 오늘날 200년 뒤에서야 부인과 어린아이들도 모두 그 풍류를 말하며 성명을 외우는 이유이네. 


오호라, 멀리서 겉모습을 바라보며 가까이 서론緖論을 들어보니, 그 깊고 오묘함 엿볼 수 없네. 더구나 이 한 폭의 유상遺像으로 어찌 그의 일생을 비슷하게라도 상상할 수 있으랴. 

ㅡ 《목재집》 권6, 찬, <황익성공유상찬>


(그림: 전라북도 진안 화산서원에 있는 황희 영정(전라북도유형문화유산). 

홍여하가 본 원본을 1844년 모사한 것이라는데, 어쩐지 석지 채용신(1850-1941) 느낌이 난다. 

만약 석지가 그렸다면 이날 유달리 컨디션이 좋았던지, 아니면 황희정승을 그린다 하니 그 인품에 눌려서 저도 모르게 잘 그려진 건지 모를 일이다. 

현재 국가표준영정, 그러니까 "이분이 황희정승이다"고 국가가 인정한 초상화가 이 작품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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