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에서 고고학자들이 16세기 교수대 구조물과 10여 곳 집단 매장 구덩이를 발견했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16세기 교수대gallows 유적을 발견했는데, 이곳은 사형수들의 시신을 교수형 후 전시한 곳이다.
남성과 일부 여성 시신은 이후 인근 집단 매장지에 묻혔다.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reventive Archaeological Research (INRAP)는 2024년 그르노블 외곽에서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16세기로 추정되는 정사각형 벽돌 구조물과 10개 매장 구덩이를 발견했다고 금요일(12월 12일) 발표했다.
이러한 발견은 처음에는 고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들은 이 구조물과 매장지가 나병 환자 수용소, 가톨릭 예배당 묘지 또는 군인 묘지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목조 교수대timber-framed gallows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역사적 건축 기록을 조사했고, 이를 통해 그들이 발견한 것이 그르노블의 공개 처형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고학적 발굴과 1544년부터 1547년까지의 건축 기록에 따르면, 이 교수대는 각 변 길이가 약 8미터(27피트)였고, 높이가 약 5미터(16.5피트)에 달하는 8개 석조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기둥에서 튀어나온 가로대는 교수형 집행과 동시에 사형수를 전시하는 데 사용된 교수대와 유사한 구조물이었다.
새롭게 발견된 이 교수대 구조물을 통해 그르노블 사법 당국은 최대 8명까지 한 번에 교수형에 처하고 전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단 매장 구덩이에서는 고고학자들이 32구 유골을 확인했는데, 대부분 남성이었다.
역사 기록을 통해 교수형에 처해져 구덩이 중 하나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남성 이름이 밝혀졌다.
개신교도인 베누아 크루아예Benoît Croyet는 1573년 그르노블 공격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고, 샤를 뒤 퓌 몽브룬Charles Du Puy Montbrun은 1575년 처형될 때까지 도피네 위그노파Huguenots of Dauphiné 지도자였다.
두 사람 모두 왕권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번역된 INRAP 성명서에 따르면, "사형수를 이런 식으로 매장하는 것은 생전에 선고된 형벌을 죽음까지 연장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의도적으로 매장되지 않았다."
또한 구덩이에 묻힌 일부 사람은 사후에 사지 절단이나 참수와 같은 "수치스러운 처우"를 받기도 했다.
교수대와 매장 구덩이 발견은 INRAP 고고학자들에게 역사적인 사법 장소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르노블 교수대는 17세기 초 정치적, 종교적 규범의 변화로 사형 집행 방식으로서의 사용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NEWS & T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로마化가 건강에 미친 영향 (0) | 2025.12.13 |
|---|---|
| 영국 기생충은 로마시대에 창궐하다 빅토리아 위생 혁명으로 감소 (0) | 2025.12.13 |
| 8,000년 전 핀란드 석기시대 펜던트 제작에 사용한 인골 (0) | 2025.12.13 |
| 영국 테이트 미술관장, 경영 부진 책임지고 10년 만에 사퇴 (0) | 2025.12.13 |
| 60년 만에 단 한 번 화려한 꽃을 피우고 죽는 야자수 (1) | 2025.1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