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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는 영화관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위 광고는 1923년 10월자 신문에 실린
조선극장과 단성사의 광고로
활동사진을 상영한다는 광고다.
활동사진 내역을 보면,
이때는 아직 조선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되기 전이라
(나운규의 아리랑은 1926년)
대부분이 미국 영화였다.
예를 들어 위에 단성사에서 상영한다는 "독선풍"은
무슨 무협지 같지만
사실 서부극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관이라 해도
쑈를 겸한 극장이 있어 위 광고 오른편 조선극장에는
활동사진 상영과 함께
권번 기생들이 나와 노래도 부른 모양이다.
연예인의 쑈와 영화를 함께 상영했으니
꽤 재미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당시 영화표 값은 얼마나 했을까?
조선의 당시 표값은 알 수가 없지만
미국은 1922-1923년 당시 영화표 값이 7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코카콜라 값이 5센트.
*** [편집자주] ***
조선은 이때 단군조선 이래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자본주의 체제로 비로소 들어간다.
한국사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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