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현장

2002 붉은악마 태극기를 수장고 복도에 방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8. 26.
반응형

2002 붉은악마 태극기 포쇄, 2012년 10월 5일.


2014년 8월 25일이었다. 이제는 문화체육관광위로 분산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용인병)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으니, 다음과 같은 제목이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어디에?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2년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당시, 경기장에서 붉은 악마가 사용한 대형 태극기가 현재는 어디에 있을까? 이를 이 의원실에서 최근 조사한 결과,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 밖 복도 한편에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한 의원실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은 13만3314점으로 15개 수장고에 나누어 수장됐지만 수장률이 125.27%로 수장고가 포화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모빌랙 등을 설치해 공간 효율을 높였다지만 수장고가 포화상태인 까닭에 일부 소장품은 여전히 수장고 밖 복도에 보관 중이며,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악마가 사용한 태극기도 수장고 문제가 있어 복도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의원실에서는 그것이 나무상자에 담겨 수장고 복도에 보관 중인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의원은 "민속박물관 특성상 민예품, 근현대 생활용품, 농기구, 상여 등 대형 소장품 비중이 높으며 매년 소장유물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면서,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소장품은 연평균 7700점이 증가 추세라 이런 수장 환경이 지속된다면 유물의 안전과 보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한 의원은 "어보(御寶)나 숭례문 같은 국보도 중요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처럼 우리네 생활문화 자료를 잘 보존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자료 배포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은 보물 1318호(신구법천문도), 중요민속자료 230호(산청전주최씨고령댁상여) 등 127점, 등록문화재 1,154점을 비롯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로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와 응원도구, 기념품 등 1162건 2628점 등을 보관 중이라고 한 의원실에 보고했다. 

이 보도자료는 전후맥락으로 볼 적에 당시 수장고 문제에 처한 국립민속박물관을 한선교 의원실이 돕겠다는 차원에서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만큼 수장고 문제가 처참하니, 이를 수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장고 확충보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마침 그런 사업을 추진 중인 박물관 측을 지원사격하겠다는 뜻에서 제기한 것으로 안다. 

한데 이 보도자료는 뜻하지 않은 역풍을 초래했으니, 다름 아닌 저 보도자료 제목이 저런 소중한 생활사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이 제대로 보관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듯이 비쳤기 때문이다. 실제 이 보도자료를 토대로 하는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민속박물관을 성토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기억한다. 이에 박물관 역시 적지 않이 당황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 혹은 보도 통용이 박물관으로서는 못내 억울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느 누구도 박물관 수집 대상으로 삼지 않은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를 민속박물관이 선제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까닭이다. 이에서는 나에 얽힌 작은 사연도 있으니, 월드컵 개최 당시 문화부 소속 기자인 나는 한때 체육부 기자였다는 경력이 고려되어, 월드컵 기간 그 취재에 잠깐 차출되기도 했거니와, 그 과정에서 나한테 배정된 미디어 관련 자료 일체를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취재 비표며, 관람권이며, 믹스트존 인터뷰권 등등을 서재에서 찾아내고는 마침 민속박물관이 월드컵 관련 자료를 수집 중이라기에, 미디어 관련 자료도 필요할 법 해서, 그것들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민속박물관으로서는 민속박물관이 그렇게도 소중한 월드컵 관련 유물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박물관 수장고 복도에 패대쳤다는 듯이 보이는 저런 보도에 못내 섭섭함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하긴 박물관으로서는 꼭 해야한다는 규정도 없는 일, 어느 누구도 당시까지는 쳐다보지도 않던 월드컵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가 이런 비난에 쳐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첨부사진은 2002년 붉은악마 태극기를 경복궁 경내 국립민속박물관 건물 지붕에서 포쇄하는 장면이다. 포쇄란 습기를 말리고, 병충해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간단히 말해 이불을 햇볕에 말리는 작업과 같다. 박물관에 의하면 사진이 포착한 포쇄는 2012년 10월 5일 일이라 한다.  

수장고 복도에 방치? 수장고 복도에 있다 해서 방치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복도도 수장고 일부다. 다만, 민박 수장고를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는 성립하니, 그런 점에서 한선교 의원실에서도 이 점에 방점을 두고 문제의 보도자료를 뿌린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진의가 무엇이건 이를 국가기관에서 방치했다는 관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를 국가기관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 아이디어를 제출한 사람과 민박은 훈포장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를 방치했느니 하는 따위로 몰아부치거나 저런 식으로 일반에 통용된다면 누가 저런 일을 애써 하겠는가? 

민속박물관 수장고 문제는 그 이전 논란과 맞물려 추후 별도로 정리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