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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시흥과 금천, 그 절묘한 통합을 꾀한 ‘금천 시흥행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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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화성 능행도에 보이는 시흥행궁

 
시흥과 금천, 그 절묘한 통합을 꾀한 ‘금천 시흥행궁’ 


                       김태식 국토문화유산연구원 전문위원, 전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발표문을 통독하면서 무엇보다 발표자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 발표문을 살피거나 이곳에서 들으신 분 누구나 동감하겠듯이 발표자가 고생했을 흔적이 역력한 까닭이다. 지도와 회화 자료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을 오늘날 지도에다 얹히는 작업은 그야말로 인내와의 싸움이다. 그 사투를 벌인 발표자,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그에 어느 정도 토대가 되었을 선행 연구진에 대해서도 다시금 감사드린다.  

  발표자는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시흥과 금천이라는 지명, 혹은 그런 역사에서 비롯하는 오늘날의 혼란상을 연원을 차곡차곡 짚었으니, 이는 이곳 서울 금천구민 터잡은 분들은 누구나 불만을 터뜨리는 문제, 곧 왜 우리가 시흥인데, 시흥은 저쪽에서 가져가고 우리는 원치 않는 금천을 쥐게 되었느냐 하는 내막을 아주 명료하게 정리했다. 이를 토대로 오늘의 이 자리를 있게 한 시흥행궁과 관련해서 다른 지자체, 특히 수원과 화성이 지난 논란을 참고자료로 삼아 현재의 시흥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서울 금천구도 나름 만족할 만한 명칭으로 '금천 시흥행궁'을 제안했으니, 토론자는 이 제안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섣부른 판단이나 이 임시 명칭에는 크게 반발은 없을 줄로 안다. 추후 여론 동향을 잘 살펴, 발표자가 제안한 명칭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시흥과 금천 문제도 발표자 연구에 의하면 우리네 상식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내력이 있음을 엿보게 된다. 주로 금천구를 터전으로 사는 지역 연고권 사람들에게서 노골로 나타나는 현상이 우리가 시흥이라는 이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아는데, 그 대신으로 얻은 금천 또한 발표자가 잘 지적 정리했듯이 연원이 간단치는 않아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벼락이 아니라 그 역사가 대단히 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지금 서울시 행정 구역으로서 금천구는 금천衿川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건 발표자도 지적했듯이 그 본래하는 내력은 黔川일 것이며, 후자가 워낙 필순이 많고 어려운 글자인 까닭에 전자로 대체했다고 보는 편이 근리近理하다. 결국 지금의 서울 금천은 내력이 이 黔에 있는 것인데, 이 금은 발표자 지적대로 멀리 삼국시대 이래 줄기차게 지명 표기에 자주 보이는 말이고, 이는 더 많은 추가조사 혹은 증거제시가 필요하지만 간단히 말해 토론자가 보건대, 기름진 땅에는 다 이 글자를 갖다 붙였다. 결국 토질이 좋은 고장을 말할 때 이 글자를 주로 쓰는데 그렇게 본다면 그에서 비롯하는 지금의 금천이라는 말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라 하겠다.  

  나아가 우리 쪽에서 빼앗겨 버려 아깝다 생각하는 시흥始興이라는 말이야말로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낙하산이라, 조선 정조 이산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자기 생부 무덤으로 성묘를 오가는 길에 임시로 머물 왕립호텔을 짓고는 그 행차를 기념해 어느 날 툭 던진 이름이다. 물론 왕이 하사한 이름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몹시도 표상성이 크기에 아깝다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금천과 시흥을 대비하면 금천 쪽이 그 내력이 물경 천년을 헤아림을 본다. 시흥이 아까울 수 있지만, 그 대신 우리는 천년 고을 금천을 얻었음을 자랑하는 방향으로 자세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토론자는 무척이나 편한 점이 있다.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처지인 까닭이다. 이 맥락에서 발표자께 부탁드리고자 한다. 계속 문제가 되는 시흥과 금천의 관계와 관련해서 아무래도 획기는 1914년 행정개편과 1995년 행정개편을 들 수 있을 법한데, 두 지도를 한 장에 엎어줬으면 한다. 2025년 현재의 지도를 바탕으로 이 두 개 지도, 지금의 서울 금천구와 경기 시흥시를 엎어봤으면 한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금천에서는 시흥을 뺏겼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만큼 빼앗겼는지 한 눈에 봤으면 싶다. 그래야 한층 두 지역 관계가 명료하게 다가올 것 같아서다.  

  오늘날 서울 금천이 시흥 본향이라 부르짖을 수 있는 절대 근거는 오늘 주인공인 시흥행궁과 그 관아 소재지가 지금의 서울 금천구에 있다는 데 말미암는다. 발표자는 이 주장을 반박하고픈 생각은 없으나, 혹 이것이 중앙과 변두리에 대한 차별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우려한다. 작금 한국사회 화두 중 하나가 지방소멸이거니와, 결국 수도권 중심 중앙집중화가 부른 비극이라 할 만한데, 혹 범위를 좁혀 시흥에 대해서도 그런 중앙과 지방에 대한 소멸 의식이 작동하지 않을까 한다. 행궁과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관아가 있다 해서, 그 지역이 정치 문화 중심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절대의 힘은 그것을 포함하는 시흥 전 지역이다. 혈관에 견주면 동맥과 모세혈관 관계와 같다 하겠다. 이참에 행궁이 있었기에, 관아가 있었기에 우리가 시흥의 본향이라는 생각은 저 시각에서 조금은 교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 문제가 발표자도 계속 지적하듯이,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이 동감하듯이 시흥행궁은 있었을 만한 자리, 강력한 후보는 이제는 누구나 아는데 문제는 그 결정적인 한 방이 모자란다는 사실이다. 발표자는 선행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삼고, 나아가 그 자신이 각종 자료를 보강해 충분히 고증했듯이 이제 행궁이 있었을 곳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이론이 있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누구나 공감하듯이 이제는 각종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그 본래 자리를 더는 확인할 길이 막막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더 환장스럽지 않겠는가? 저기인 걸 아는데, 속을 파고 들 수 없으니, 그렇다고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본래 위치 확정 문제는 우리가 추진하는 행궁 복원 사업과 결정적으로 연동할 수밖에 없다. 기왕 복원한다면 본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그렇다고 저를 터 잡고 사시는 분들한테 이젠 방 빼! 여긴 내 집이야 할 수는 없잖은가? 그렇다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마뜩한 공간이 주변에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듯해서 더 갑갑하기만 하다. 그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 그리고 주변 일대는 토론자도 몇 번 돌아보기는 했지만 복원을 생각하면 한숨만 난다. 그렇다고 금천구 주머니 사정이 빵빵하다면야 모를까 재정자립도 측면에서도 그리 좋은 순위는 차지하지 못한다. 어느 지자체장 하는 말을 들으니 “내가, 우리가 가진 것은 돈과 땅밖에 없다”는데 왜 자꾸 그 지자체장 말이 금천에 오버랩하는지 모르겠다.  
 
  이를 위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행궁이 있었을 자리 주변에 대해서는 향후 공사시에는 문화재 조사를 강제해야 할 것으로 본다. 혹 이런 조례가 있는데 토론자가 모르고 있다면 혜량을 구한다. 저 일대에서 공사가 없을 리는 없다. 소규모 행사라도 반드시 공사에 앞서서 문화재 조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조금 양보해서 공사에는 입회조사라 해서 고고학 전문가가 공사 현장을 입회해서 문화재가 나오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런 사례들이 쌓이면 우리가 찾는 금천 시흥행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본다.  
 
  위치와 더불어 그것을 구성한 개별 전각과 그 배치 양상 전반은 발표자가 현재 우리가 구할 만한 자료들을 거의 빠짐없이 동원해서 재구성했다고 본다. 물론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자료는 얼마든 더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발표자가 재구再構한 배치를 보강할 뿐, 획기적으로 수정할 만한 자료 출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만큼 조사가 철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는 현재 행궁 복원을 겨냥하거니와, 무엇을 위한 복원인가를 지금 다시금 확실히 짚어야 한다. 이 목적이야말로 지금의 모든 것을 구속하는 헌법이 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발표자는 “금천 시흥행궁은 단순 복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역사적 행사를 재현하는 데 활용 가능한 유산으로서 다른 지역 사례와 구별된다”고 하거니와, 이에 대한 교정 혹은 보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물론 맥락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 대목만 보면 화성 행차 재현을 위한 장소 제공이라는 기능만을 부여한 것으로 축소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금천 시흥행궁은 그 등장 맥락도 그렇고 실제 그 활용도 그러하며, 그것이 폐기된 것도 같은 맥락이거니와, 발표자 지적처럼 “오직 정조대왕 능 행차의 중요한 경유지였던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결국 시흥행궁은 정조와 떼레야 뗄 수 없고, 특히 그의 능 행차를 위해 탄생한 것이며, 실제 그 과정에서 건축되어 그 기능으로 활용됐다. 이는 정조의 사망과 더불어 사실상 생명이 끝나는데, 이런 행궁이 정조 이후로도 요긴하게 재활용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를 못해 행궁을 탄생케 한 양분이 소진되자 행궁 역시 소실하고 말았다. 과연 무엇을 위해 행궁을 복원할 것인가? 논리를 좀 더 보강해야 하며, 아울러 같은 맥락에서 복원 이후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본다. 발표자도 지적했듯이 이와 같은 조선시대 관아 복원은 꽤 다른 지역 사례가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토론자가 보건대 이른바 생색내기용, 치적 확인용 말고 복원 이후 제대로 활용되는 사례를 무척이나 찾기 힘들다는 사실도 고려했으면 싶다. 활용이 없는 건물은 미라다.  
 
  발표자 정리에 의하면 정조 능 행자 과정에서 비롯한 시흥행궁은 본래 화성으로 통하는 길목은 아니었다. 한양도성에서 그곳을 오가는 길은 “과천을 지나는 십대로十大路인 수원로”였다 하거니와, 을묘년(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는 화성 행차를 계획하면서 그 길에 지나는 가마가 남태령을 넘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지금도 서울 사당역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통과하는 남태령은 조선시대에 견주어 상당한 삭평이 진행되고 많은 정비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만만찮은 도보 고갯길이라, 고령의 어머니가 아무리 가마를 타고 간다 해도 여러 곤혹스러움이 따를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순전히 그가 직접 체험한 일에서 바탕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간단히 말해 “내가 오가면서 보니...” 딱 이 심정이었다.  

  지금의 시흥행궁 자리를 지나는 코스는 발표자도 말하듯이 그 과정에서 경기감사 서응보가 생각한 대안이었다. 고갯길을 돌아가는 평지대로를 찾다 보니 훗날 시흥행궁을 지나는 신작로를 낸 것이다. 이런 내력은 그런 시흥행궁로가 왜 정조 이후 폐기되었을까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고 본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우회로인 이 시흥행궁로는 폐기된 것이다. 남태평이 넘기는 곤혹스럽기는 해도 서울로 오가는 short cut이라 해서 계속 애용된 것이다. 내친 김에 발표자께 기존 수원로와 시흥행궁로는 비교하는 지도 한 장 첨부를 또 부탁드리고 싶다.  

  이번 발표에서 또 하나 높이 치고 싶은 대목은 행궁 폐기 이후 그 자리 혹은 관아터의 유전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 분석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지역 근대적 학교 등장에서 맥락을 찾으려 한 점은 돋보인다. 특히 근대기 이 지역 학교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에 착목해 그 장대석을 기초로 그것이 비교적 수준 높은 건축 기법임을 확인하는 한편, 공포가 없고 각기둥에 홀 처마를 갖추고 점을 들어 이 학교 건물이 행궁의 행랑채일 가능성이 거론한 점은 의미가 특히 있다고 본다. 이런 분석들이 쌓여 결국 시흥 금천학 밑거름이 될 것이라 본다.   
  
  발표자 지적 중에 특히 눈길이 간 대목은 정조(혹은 조선후기) 당시 경기도 36주현 중에서도 빈한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꼽힌 시흥이 1794년 4월, 공사 시작과 더불어 전국에서 솜씨 좋은 목수들이 모여들고, 또 그 웅장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면모를 일신했다는 점이니, 결국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한 경제 부흥 한 대목을 보는 듯해서 토론자로서는 몹시도 흥미로웠다.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행궁 건설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야 할 것으로 본다.  
  
  금천 시흥행궁은 정조 사후 곧바로 퇴락으로 접어든 것처럼 토론자는 말했으나,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라 어찌 당장 그리 되었겠는가? 발표자도 지적하듯이 정조와 효의왕후 장례 행렬이 머물기도 했고 그의 아들 순조 역시 수원 행차 때 행궁에서 묵기도 했다. 토론자로서는 많이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니, 비단 어찌 이런 배움이 토론자에 국한하리오? 이런 기회들을 빌려 시흥금천학이 본궤도에 올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상은 서울 금천구(구청장 유성훈)가 22일 오후 2시부터 청사 12층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시흥행궁 관련 학술대회 김관수 (사)화성연구회 부이사장의 ‘금천 시흥행궁 복원을 위한 위치와 배치에 대하여’란 발제에 대한 토론문이다. 
 
발제문이 하나라, 주최 측에서 토론자들에 대해 발제에 준하는 분량의 토론문을 요청했거니와, 그래서 이렇다 할 말도 없는데 주절이주절이 늘여놓은 것이 저것이다. 

어쩌겠는가? 물주가 원하는 대로 맞추어 주는 것이 서비스 아니겠는가? 

저 발제에 대해서는 나 외에도 △오세덕 신경주대학교대학원 문화재학과 교수, △한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강선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리진흥부장 또한 달라 붙는다. 
 
이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금천구는 2026년 타당성 용역을 진행하며 향후 시흥행궁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시흥행궁은 114칸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지만 철종 때 소실하고 말았다.

그 위치는 현재는 대략 드러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확실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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