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가 국가유산청 돈을 받아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에다가 의뢰한 영천 완산동 고분군 발굴성과가 25일 공개됐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1천500년 전, 그러니깐 서기 500년 무렵 이 지역에서 떵떵거리며 산 사람이 묻힌 곳임을 확인했다 하거니와
고분 정비와 복원을 표방한 이번 조사 결과 봉분 기준 지름 16m가량 되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무덤을 필두로 하는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3기랑 독무덤 2기를 확인했다 하거니와
특히 주목할 곳이 1호 돌무지덧널무덤이라 명명한 곳이라,
저네가 하는 말을 보면 이 무덤은 지상에 '凸'자 모양으로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설치한 뒤 깬돌과 강돌을 덧널 둘레 부분과 윗부분에 채워 놓은 형태라고 한다.
뭐 딱 봐도 경주에서 흔해 빠진 적석목곽분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1호분 이른바 매장주체 시설이 이렇다는데, 보도자료에서는 品자라 했지만 이 모양새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바라보는 화면 기준 왼쪽 발치 상단에도 그 대칭하는 껴묻거리 공간이 있을 것으로 보고서 저리 판정한 게 아닌가 한다.
유물부장궤라 하지만 이 말은 다른 한국고고학 용어랑 마찬가지로 문제투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공간, 예컨대 시신과 그 주위로 유물을 넣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시체 주변 양상은 어떤가?
이렇단다.
이 시대 다른 지역 토호 무덤에는 으레 보이는 양상이다.
경주 지역 무덤에서도 저 시대 저런 규모는 가볍게 나온다.
간단히 말해 반복 재생이다.
새로울 구석 없다.
문제는 이제 무엇으로써 저런 클리쉐를 새롭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겠는가?
예컨대 유리로 만든 곡옥이 나왔다 하는데, 저런 곡옥 만드는 틀도 제법 나왔다.
이젠 제대로 분석 한 번 해 봐야지 않겠는가?
제발 동남아산 태국산 헛소리 집어치고, 저 유리 구체하는 성분은 어떠한지 깨뜨릴 수는 없겠지만 요새 과학기법 동원하면 얼마든 비파괴 분석 가능할 것으로 보는데 이런 시도들을 해야 않겠는가?
언제까지 와! 이 무덤 팠더니 금동관 나오고 환두대도 나왔으니 이 지역 수력 지배계층 무덤이다? 이딴 거지 같은 고고학 해야 한단 말인가?
그딴 고고학 이제 집어칠 때다.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할 때다.
저 삼엽문 환두대도만 해도 나무 자루가 보이는데 물론 당연히 하겠지만 나무 재질 분석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는 저 바닥 흙들이다.
저 흙들 모조리 분석기 돌려야 한다.
저 정도면 운모도 나왔을 법한데 그런 기술이 없으니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비단 운모 뿐이겠는가?
저 바닥 흙들이 어떤 비밀을 함유하는지 누가 아는가?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니 이번에라도 제대로 해봐야지 않겠는가?
흙이라는 흙은 모조리 토층별로 쏵 분석기 돌려 봐야 한다.
틀림없이 산초니 하는 약물도 깔았을 것인데, 이런 것들은 저런 조사 없이는 나올 수가 없다.
더는 거지 같은 고고학 말아야 한다.
기술하기를 으뜸덧널 피장자의 경우 금동관과 금제 고리 귀걸이, 유리구슬 목걸이, 은제 허리띠, 은장 고리 자루칼 등이, 딸린덧널에선 금동제 말갖춤(마구류) 및 철기류와 토기류 등이 나왔다는데 차이가 뭔가?
이른바 부장곽과 저 시체 주변 유물은 결정적인 차이가 뭔가? 이런 걸 물어야 한다.
매양 보던 것이라고 넘겨서 무슨 새로운 학문이 나오겠는가?
2호와 3호 돌무지덧널무덤은 1호 봉토에 덧대어 만들어졌는데 2호는 '凸'자, 3호는 장방형 형태다. 두 무덤에서도 다수의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가 출토됐다...고 하거니와 배장묘인가 아닌가?
이번 조사 성과를 이 일대가 236년(신라 조분 이사금 7년) 아음부阿音夫가 나라를 이끌고 신라에 귀부한 골벌국 무대였음을 고리 삼아 이를 골벌국 유산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뭐 이런 일이야 흔해 빠졌으니 그 자체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조심 또 조심했으면 싶다.
덧붙여 저 출토장면을 보면 삼엽문 환두대도 두 자루는 지금 보니 자루만 아니라 아예 몸통이 목칼이라,
역시 내 예상대로 저 당시에는 속내는 눈꼽만큼도 중요하지 않았고 결국 껍데기 개폼 내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다시금 확인해주지 않는가?
말로만 위신재 위신재 떠들 일 아니다.
저건 명기다.
명기인 까닭에 목심을 썼고 겉만 번지르하게 금속 칼 흉내를 냈을 뿐이다. 환두대도 두 자리를 저리 얼굴 양쪽에 놓는 방식은 나로서는 생소롭다.
또 덧붙여 인골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현재까지는 인골은 다 삭아 없어진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느냐는 체로 치기 전에는 모른다.
모르긴 해도 이빨 정도는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이빨은 수거하거덜랑 법랑질 분석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저 사람이 생전에 육식을 했는지 채식을 했는지 몇살에 죽었는지 남자인지 여성인지(환두대도 양상으로 보아 남자로 보이지만)도 판별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주변 무덤에 대해서도 똑같이 시도해서 혹여 모를 일 아닌가? DNA 나오지 마라는 법도 없다.
이런 것들을 다종다양하게 시도해야지 언제까지 환두대도다 금동관이다 헛소리 찍찍 하는 고고학 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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