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해동 요순海東堯舜 세종의 유일한 흠결
불교, 해동 요순海東堯舜 세종의 유일한 흠결
세종 32년 경오(1450) 2월 17일(임진일)에 이도李裪가 숨을 거두니 이가 훗날 성군이라 추앙받는 조선 4대 왕 세종이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데는 궁궐이 아니라 아들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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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저 글에서 전문을 인용한 세종에 대한 실록의 평에서 주목할 점이 여러 가지인데,
훈민정음 창제 이야기가 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일을 대단한 업적으로 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니
훈민정음 창제 의미는 훗날, 그가 죽은지 6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본격으로 부각한다.
물론 그가 임금으로 이룩한 업적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저 사론史論은 매우 정치적이라,
해동 요순이라는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니 성군으로서의 이미지 조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으니 그런 맹렬한 공부가 오직 태평성대를 이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본다.
그 성군상은 정통 유가가 말하는 그것이라 무력을 쓰지 않고서도 오직 인의仁義로써 그것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매일 사야四夜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輪對를 행하고, 다음 경연經筵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거나
"구족九族과 도탑게 화목하였으며, 두 형에게 우애하니, 사람이 이간질하는 말을 못하였다. 신하를 부리기를 예도로써 하고, 간諫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으며, 대국을 섬기기를 정성으로써 하였고, 이웃나라를 사귀기를 신의로써 했다."
는 기술이 다 그것이라
이 과정에서 정작으로 지적해야 하는 그의 위업이 빠졌으니, 그것이 바로 무武의 실천이었다.
세종은 저 해동 요순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하긴 요순 또한 그 태평성대를 이룩하기 위해 무자비한 철혈 통치를 하기는 했다만), 한국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군주였다.
돌이켜 보면 한국역사에서 세종 만한 팽창주의를 철저히 구현한 군주도 없다.
대체로 재위 기간이 꽤 긴 군주들이 즉위 때부터 물러날 때까지 시종해서 군사적 팽창주의를 구현하려는 인물은 드물다.
잠깐 하다가 시위 무력으로 위세를 과시한 다음에는 그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그 팽창주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시황제조차도 육국을 멸하고선 팽창주의를 끝냈다.
하지만 세종은 달라서 시종일관 군사 팽창주의를 지속했다.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이방원 입김이 센 것으로 보이지만 대마도 정벌을 단행한 그는 곧바로 북방 개척에 나서 여진을 박살 냈다.
이 박살이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냥 박살내고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땅따먹기를 동반했다는 사실이다.
대마도는 맛만 보여주고 물러난 그는 동북지방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전략을 구사했으니, 전대 고려왕조, 특히 윤관이 실패한 원인을 철저히 구명한 다음, 그 대안으로 사민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종서 최윤덕이 지난 길을 따라 남쪽에서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뽑아 올렸다.
그 원성이 국토를 물들게 했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식민주의 정책을 고집하며 무지막지하게 여진을 몰아낸 자리에 조선 백성들을 갖다 심었다.
이 세종의 군사주의 팽창 정책이 우리 아는 현재의 남북한을 합친 대한민국 영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어찌 한국사 천하 대사건 아니겠는가?
압록강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는 영토는 세종이 흘린 피땀이 이룩한 지도다.
이 위대한 군사적 업적이 당시 이데올로그들이 그린 이상적인 군주상과는 맞지 않는다 해서 저 사론은 모조리 빼버렸다.
우리는 흔히 사군육진이라 해서 두반강쪽이랑 강계 중강진 쪽에 동글배기 각각 하나씩 두 개를 치는 일로 그치지만, 그가 식민주의 팽창주의로 개척한 땅이 진짜 그 동글배기라고 생각하는가?

흔히 이렇게 표시하는 지점이 세종이 개척한 땅 같은가?

세종이 실제로 개척한 땅은 저거다.
단순히 동글배기 두 곳?
웃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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