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는 내가 몇 번 방문했느냐 하는 횟수가 중요하고, 나아가 그에서 접하는 초기 생경함이 다 하나하나 신이해서 그 내력을 따지지만
이제 더는 나한테 로마는 그런 존재가 아니어니와
어쩌다 인연하게 된 로마는 그 관계한 내력이 짧기는 하지만 방문 횟수가 더는 무의미해져서
대체 몇 번을 들락거렸는지 이제는 숫자도 헤아릴 수 없으니, 어쩌면 외국 도시 중에서는 가장 친숙한 곳이 되었거니와
종래 나한테 이런 곳이 일본 나라였지만, 이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친숙함을 장착한 곳으로 변모했다.
처음 찾았을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방법에서부터 하나하나가 겁이 났지만, 그 겁대가리를 상실하면서 구석구석을 뒤졌으니
처음 왔을 때는 그 특유한 자갈돌도 신이해서 그 내력을 파기도 했으니
이런 생경함, 혹은 두려움은 이런 데를 일상으로 삼는 사람들한테는 전연 문제의식이 있을 수 없으니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건지느냐 하는 관건은 이 초기에 결판난다.
그 문제 의식 혹은 의뭉함 혹은 궁금증은 굳어버린 상처가 굳은살로 변모하듯이 이내 상실하고 마니
가장 참신한 생각들은 이 초기 생경하고 신이할 때 샘솟기 마련이라
그렇다고 어찌 사람이 이 초창기 정신으로만 살겠는가?
이 초기 정신을 시종일관 무장하는 일을 우리는 요새 꼰대라 부르거니와,
그래서 시간이 흘러 다 무뎌지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초기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나니,
이것이 곧장 원리주의로 환원해서 시대 흐름을 전연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 반동으로 전락하는 일이 다대하다.
지금 로마는 올해가 희년이니 뭐니 해서 물론 일부 지역에 국한하기는 하겠지만, 시내 중심가는 온통 한국거리라 해도 다름이 없을 정도로 그들로 바글바글하는 세상이라
이 고환율 시대에 이것이 무슨 일이냐 하는 궁금증이 일거니와, 어찌 저 많은 사람이 예수 찾으러 왔겠는가?
우물 안에서는 우물 안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국내가 시끄러운 것은 너무 잘 안다.
하지만 그런 국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와는 전연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 시끄러운 시위 현장 바로 뒷골목에서도 그와는 전연 동떨어진 삶을 펼치는 사람이 천지다.
이 두루하는 여러 흐름, 그 시끄러움과 담을 쌓은 사람들, 혹은 그에서 멀어지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려 나는 절대다수라 보거니와
우리 역사학은 이런 두루하는 그 모든 사람을 포괄 포용하는 그런 흐름으로 가야 한다.
내가 옳다 믿는 그 방향으로 동참과 동의를 윽박 강요하면서 왜 너희는 이런 데는 무관심하며,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는 왜 동참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윽박이 없는 세상,
그러면서도 그 두루하는 사람을 다 아울러 포용하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을 품는 역사학을 꿈꿔 본다.
이것이 독립운동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서서 호의호식도 하지 못한 내 아버지 같은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당시 조선인 2천만 중 1천999만 명이었다 보거니와,
어찌 이 1천999만 명을 버리고 1만명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앞세우고 그것이 역사의 대세라 하겠는가?
그건 폭력이요 나찌즘이며 파시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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