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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석기 시대 유럽 전역에서 의례적 살인이 있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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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고학도들, 인신공희 전통 흔적 추적

 

프랑스 연구자들이 5,600년 전 프랑스에서 매장된 여성들 특이한 자세가 의식적 교살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니콜라 세네가스


(2024년 4월 10일) 1984년, 프랑스 론 계곡Rhône Valley에서 법의인류학자 에릭 크루베지Eric Crubézy는 곡물 저장고처럼 생긴 석기 시대 구조물에서 세 여성 유골을 발견했다.

5,600년 된 생폴 트루아 샤토Saint-Paul-Trois-Châteaux 유적에서 한 여성은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다른 두 여성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뒤틀려 바위 돌출부 아래에 숨긴 상태였고, 그 위에는 부러진 갈돌들grindstones이 쌓여 있었다.

의대를 갓 졸업한 당시 25세 이 연구원은 유골의 기묘한 배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크루베지는 "독특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40년 후, 한 법의학 저널에서 이탈리아 마피아가 사용한 살인 방법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야 그는 갑자기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법의인류학자 에릭 크루베지Eric Crubézy. 법의학자처럼 생김? 길 그리섬 정도는 되어야.

 
파리 시립대학교Paris City University 법의인류학자 베르트랑 뤼드Bertrand Ludes는 인카프레타멘토incaprettamento라고 일컫는 이 행위는 "그 사람의 본보기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위해 행한다"고 말한다. 

희생자들은 발목과 목에 밧줄을 두른 채 엎드려 뉜 상태였고, 다리 무게가 천천히 목을 졸라 죽인다.

현재 폴 사바티에 대학교Paul Sabatier University에 있는 크루베지는 "정말 끔찍하다"고 말한다.

"정말 잔인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졸라 죽도록 강요하는 거죠."
 

저자들에 의하면 저런 식으로 목졸라 살해했다 한다.


오늘(2024년 4월 10일) 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에서 크루베지, 뤼드, 그리고 공동 저자들은 생폴 트루아 샤토 구덩이에 있던 두 여성이 인카프레타멘토incaprettamento로 살해당했으며, 이 살해는 유럽 초기 농부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의례적 폭력의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폴란드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의 발굴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5곳 다른 유적에서 인카프레타멘토 스타일 자세를 취한 유골 20구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 유골들은 모두 기원전 5500년에서 기원전 3500년 사이, 즉 유럽 전역으로 농업이 확산되던 신석기 시대에 매장되었다.

크루베지는 "이 특별한 고문은 이 모든 유적지에서 흔히 행한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폴 트루아 샤토에서 이례적인 매장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의식이나 의례 일부로 보였다.

집도 없었고, 사람들이 그곳에 영구적으로 살았다는 흔적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대규모 모임을 위해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인다.

동물 뼈 더미는 잔치를 증명했고, 유적에서는 도기와 석기가 발견되었는데, 화학 분석 결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온 것으로 밝혀져 방문객이 급증했음을 시사한다.
 

신석기 인신공희 흔적들이라고 저자들이 지적한 곳

 
유적 중심부에는 둥글고 사일로silos와 비슷한 구조물들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크루베지와 동료 알랭 비칭Alain Beeching이 1984년에 연구한 것도 있었다.

하지와 동지summer and winter solstices를 향해 구멍이 난 타원형 참호val trench 하나가 여러 사일로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세 여성이 묻힌 사일로도 있었다.

한편, 깨진 갈돌grindstones과 동물 제물은 다산과의 연관성을 시사했다.

이는 생존을 위해 태양과 비에 의존한 농경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박관념obsession이었다.

크루베지는 "우리는 그것이 뭔가 특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생폴 트루아 샤토에서 일어난 폭력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다른 유적에서 발견된 유골의 위치 또한 의식적인 질식ritual asphyxiation을 시사하는데, 인카프레타멘토incaprettamento 또는 몸통에 돌을 쌓아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행위였을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이러한 유적에는 갈돌, 동물 유골, 그리고 사일로와 유사한 구조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공통적인 의식이 행해졌음을 시사한다.

유럽 신석기 시대 매장 관습을 연구하는 요크 대학교 고고학자 페니 비클Penny Bickle은 이 논문이 "고고학, 즉 먼 옛날의 죽음에 대한 연구의 훌륭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다산 의식이 인간 제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인신공희가 있었다는 것이 저자들 추정이다.


뼈만으로는 희생자들이 고문을 당했는지, 심지어 교살로 사망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묶이기 전에 약물을 투여받았거나, 술에 취했거나, 다른 이유로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

루데스는 "뼈에는 무덤 구덩이에 묻혔을 당시 의식이 있었거나 심지어 살아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만한 흔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러한 분석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크루베지와 공동 저자들은 매장 방식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카프레타멘토 스타일의 교살에 대한 증거가 있는 유적은 수백 킬로미터와 수 세기 시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으며, 도구와 도기 스타일과 같은 단서는 해당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독특했음을 시사한다.

크루베지는 일관된 살인 방식은 신석기 시대 문화권 전반에 걸쳐 공유된 신앙이나 의례를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서로 다른 음식을 먹은 중세 유럽인들이 모두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를 인식한 것처럼 말이다.

"같은 의례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발견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무언가입니다."

일부 동료들은 이러한 해석이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제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신하지만, 그 기간 동안 어떤 통일된 우주론이 작용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다"고 비클은 말한다.

"그들은 모두 농부인데, 사람들이 정확히 같은 이유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인신공희 장은 이렇게 관리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아마도 초기 농부들이 공통된 전통이나 종교를 지녔다기보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사한 관행을 발전시키도록 이끈 사고방식을 공유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석기 시대 학살 유적을 발굴한 독일 골고고학자 크리스티안 마이어Christian Meyer는 '희생sacrifice'이라는 용어조차 현존하는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신석기 시대에는 폭력적인 죽음의 사례가 많지만, 그 증거는 대개 유골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부서진 두개골이나 날카로운 돌 화살촉 자국이 그 예다.
그러나 교살Strangulation은 유골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마이어는 "그들은 유골의 위치를 폭력적인 행위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 희생Human sacrifice은 널리 퍼져 있었고, 여러 문화권에서 이를 행했습니다. 하지만 증명하기는 어렵고, 구덩이에 시신을 배치한 것 외에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이 의식의 성격이 어떠했든, 어느 시점부터는 유행에서 벗어났다.
 

인신공희를 둘러싼 그 현장 전경들이라 해서 저자들이 상상해서 그린 공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서유럽에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다.

신석기 농부들은 거대한 돌덩이를 사용하여 스톤헨지와 프랑스와 영국 제도 전역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수십 개 거석 무덤을 비롯한 기념물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크루베지는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거석 기념물들을 통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던 거대한 유적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doi: 10.1126/science.z1uf6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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