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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Ten story Pagoda at Wongaksa Temple Site, Seoul 대원각사탑大圓覺寺塔

by 한량 taeshik.kim 2020. 7. 1.

 

 



Wongaksa Temple whose precincts once housed this stone was established in 1465 at the current location of Tapgol Park in Downtown Seoul.

The temple continued to thrive as a state institution even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hich adopted Confucianism as its ideological foundation and suppressed Buddhism.


 

 



It was in 1504 when Joseon was under the rule of Yeonsangun, a despotic king, that the temple was closed and its premises were turned into a gisaeng (female entertainer) house called Yeonbangwon.

This 12-meter-tall marble pagoda is the only existing monument of its kind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boasting of elaborately carved decorations that create wonderful aesthetic harmony with the grayish white surface of the marble.


 

 



The pagoda consists of a three-tier base in polygonal shape -- decorated with elaborately carved images of various creatures such as dragon, lion, and lotus -- and the ten-story main body wherein the lower part of the three stories is polygonal in plain view just like the base and the upper part of the seven stories is in square form.

Each story exhibits the appearance of a traditional Korean house in a detailed manner complete with roof, decorative support brackets, and columns.


 

 



Compared with other Korean stone pagodas largely made of granite, this pagoda is unique since it is made of marble and due to its structure whose details are similar to those of the Ten-story Stone Pagoda of the Gyeongcheonsa Temple Site built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 record engraved on the top of the pagoda shows that it was set up in 1467.


 

 



The pagoda is now regarded as a great masterpiece for its unique decorations wrought with excellent carving techniques.



국보 제2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지정(등록)일 : 1962.12.20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 (지번)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2번지 탑골공원
시대 : 조선시대 초기 15세기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 서울 종로구청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원각사는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왕조가 개창하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을 중요한 국가정책방향으로 설정했지만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圆觉寺是坐落于现塔谷公园所在位置的寺庙,修建于朝鲜世祖11年(1465)。朝鲜时代在崇儒抑佛政策下作为重要的古刹得到了保护,直到1504年,燕山君赶走了所有僧侣,并将这座寺庙改建成名为‘联芳院’的妓院,这座寺庙因而销声匿迹。我国石塔的一般材料是花岗岩,但其采用了大理石来建造,无论是整体形态还是细部构造等都和高丽时代的敬天寺址10层石塔非常相似,因此倍受关注。根据塔上部存留的记录可以得知建造于世祖13年(1467),造型奇特且装饰题材丰富,是极其优秀的作品。


 

 

 



円覚寺は今のタプコル公園の位置にあった寺で、朝鮮世祖11年(1465)に建てられた。朝鮮時代の崇儒抑仏策の中でも重要な寺刹として保護されてきたが、1504年に燕山君がこの寺を「聯芳院」という名前の妓生家(芸者屋)に変え、僧侶たちを追い出して寺はなくなった。韓国の石塔の一般的な材料が花崗岩であるのに比べて大理石で作られ、全体的な形態や細部構造などが高麗時代の敬天寺址十重石塔に非常に似ていることでさらに注目を浴びている。塔の上部に残っている記録から世祖13年(1467)に建てられたことがわかり、形態が特異で表現装飾が豊かなので立派な傑作品の一つに数えられている。

이상 각국어 설명은 문화재청에 의한다.


 

 

 

우리 문화재업계를 보면 보호막 덮어씌지 못해 환장한 정신병자들 집합소 같다.

걸핏하면 이집트 미라 삼베 싸듯 꽁꽁 싸매두고선 사람을 절단하면 그것이 곧 문화재보호라 착각한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도 그 재료가 대리석이라 훼손이 가속화한다는 명분을 내걸고는 유리벽치고는 송장 수의 감싸듯 해놓은지 근 이십년이다.

보존과학한다는 친구들 걸핏하면 송장 만들기 좋아하는데 뭐 그래야 공사비 나온다면야 할 말이 없다만 문화재보호를 구실로 문화재 송장 만드는 짓거리는 이제 그만 작작 좀 해라.

그래 저게 보호니? 니들 한여름 유리병 안에 든 저 탑 온도 재봤어? 삶는다 이 등신들아.

또 걸핏하면 산성비 운운하며 박물관에 들여놓을 생각만 한다. 지광국사탑도 고쳐 보내라 병원 보내놨더니 아주 병신 취급해서 실내 들여놓으란다.

병신 만들어달라 보냈니?

그럴거 뭐하러 후송해갔니?

제발 뻘짓 좀 그만 해라.

훼손되어 없어져? 없어지면 어떤데?

왜 문화재는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단 말인가?

 

***

 

장소 이론 중 Let it be로 놔두는 게 최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문화관광학에서는 Authenticity 라고 하죠. 인공이 자꾸 가미되면 장소성상실Placelessness 상태로 가죠. 대한민국 문화재 보존은 국박 중심입니다. 있는 곳에 갔다 놔야죠. 


중앙 국박 동종 집합소에 가면 천안 성거산 천흥사 동종, 참 멋집니다. 천안 천흥사에 갖다 놓으면 관괭객이 년 수십만명이 다녀갈 겁니다. 문화재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운동 해야 합니다. 

 

(관광 전문가 피터 장 선생 첨언이다. 부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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