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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김영묘金泳墓, 중국 장안에서 발견된 한국 인질 왕자 무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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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묘 매장실. 그가 알았을까? 이역만리 저런 데 묻힐 줄?

 
이 소식은 작년 중반에 국내로도 타전되어 이곳저곳 검토가 이뤄진 것으로 알거니와

그땐 난 흘러버렸으나 이곳저곳 웹서칭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아케오뉴스가 걸려들어 뒤늦게 정리한다.

이 아티클에서 조심할 점은 시종일관 신라는 당 제국 제후국이라는 관점이 관통하는 중국 시각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한국 인질 왕자 무덤 발견
 

김영 묘지명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중국 고고학자들이 중국 북서부 섬서성 서안에서 고대 한국 신라 왕국 인질 왕자 김영金泳 무덤을 발굴했다.

이 놀라운 발견은 신라 왕족 무덤이 공식으로 발굴된 최초 사례다.

중국신문(CNS) 보도에 따르면, 무덤 안에서 발견된 비문은 김영의 생애를 상세하게 기록해 당나라 인질 제도와 한반도에 위치한 신라와의 외교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섬서성고고연구원은 이 무덤이 고대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확인했다.

과거 도굴 흔적이 있지만 무덤에서는 풍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 구조는 단순하다. 통로가 앞쪽에 있고 뒤에 매장실이 있다.
매장실인데 이걸 보니 뼈가 있다.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결정적으로, 비문은 무덤 주인이 신라 왕자이자 당나라 조정의 정치적 인질이었던 김영임을 확인한다.

이 무덤은 길고 경사진 입구 통로long sloped entrance passage와 채광창skylight shaft이 있는 단일 석실 토굴single-chamber earthen cave이다.

독특한 칼날 모양 구조knife-shaped layout는 남쪽을 향한다.

원래 입구는 파괴되었고, 현재 매장실은 지하 약 4.5미터에 있다.

남북으로 10.4미터, 깊이 4미터인 이 무덤은 통로passageway, 복도corridor, 채광창skylight shaft, 터널tunnel, 그리고 매장실burial chamber로 구성된다.
 

부장 동물 도기류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이것이 바로 탑모양 항아리라는 유물이다.
사천왕
쌍봉 낙타


고고학들은 도기 천왕상pottery figurines of heavenly kings, 수호신tomb guardians[진묘수], 마부horse handlers, 십이지신 동물zodiac animals 등을 묘사한 붉은 점토 토기 인형을 비롯한 83점 부장품을 발굴했다.

또한 낙타, 말, 소, 양, 돼지, 개, 닭 등 58점 점토 동물상도 발견되었다.

그 외 주목할 만한 유물로는 탑 모양 항아리pagoda-shaped jar, 개원통보Kaiyuan Tongbao 시리즈의 구리 동전, 그리고 석지명stone epitaph이 있다.
 

뭔가?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청석靑石bluestone으로 만든 묘지墓志는 사각형 받침대와 구름과 꽃무늬로 장식한 돔형 덮개로 구성되며, 각 모서리에는 모란꽃peonies을 조각했다. [모란을 장식한 유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리다]

중앙 비문은 고대 전서체seal script로 "대당 고 김부군 묘지명大唐故金府君墓誌銘Epitaph of the Late Lord Kim of the Great Tang"이라고 씌었다.

본문에는 김영의 생애를 기록한 557자 한자가 정자체로 새겨 있다.
 

묘지를 통로에서 현실로 통하는 가운데다 뒀다.



비문에 따르면 김영은 747년(천보 Tianbao 6년)에 태어나 794년 48세 나이로 장안 태평리Taipingli 객사에서 사망했다.

그는 당나라 시대에 신라와 같은 제후국 충성을 확보하고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흔히 행해지던 정치적 인질로 당나라에 파견됐다. 그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인질로 잡혀 당나라 정부에서 관직을 역임했다.

김영은 당나라 사신을 수행하여 신라에 두 차례 외교 사절로 파견되었고, 장례 및 대관식과 같은 의례에 참여했다.

그의 장례식은 장안현 현령을 비롯한 당나라 관리들이 주관했다.
 

매장실


당나라 조정은 김영에게 묘지와 관을 하사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존경받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묘비명에 김영의 아내가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질로 잡힌 왕자들의 기록에서 보기 드문 세부 사항이다. 그의 아내는 태원의 명문 왕씨 가문 출신으로, 연석현 현령magistrate of Yanshi county 왕건릉Wang Qianling의 딸이었다.

이는 신라의 인질 왕자들이 종종 유력한 중국 가문과 혼인을 맺어 정치적, 문화적 유대를 강화했음을 시사한다.
 

김영묘 위치


당나라와 신라 사이의 인질 제도 이해

신라에서 당나라로 왕족을 인질로 보내는 관행은 강력한 당나라 제국에 대한 신라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 전략이었다.

김영과 같은 인질 왕자들은 당나라 조정에 머물면서 유교 교육을 받고 중국 엘리트 사회에 통합되었으며, 외교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들의 존재는 당나라의 지배력과 상호 협력을 동시에 상징했으며, 문화 교류와 정치적 감독을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했다.

중국문화유물학회Chinese Society of Cultural Relics 회원인 류정Liu Zheng은 글로벌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의 무덤 발견은 당나라가 신라와 같은 제후국과 맺은 인질 제도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이는 당나라가 외교적, 문화적 교류를 통해 어떻게 주권을 유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왼쪽 둘은 천왕상 같고 오른쪽이 진묘수인 듯하다.


김영의 외교적 임무와 지도적 역할은 인질 왕자들이 당나라와 그들의 모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단순히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양국 관계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이번 고고학적 발견은 중세 동아시아 외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며, 정치적 인질들이 어떻게 문화 간 유대를 증진시키고 당나라가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화했는지 보여준다.

 
***

 
이상은 영문 아티클을 기반한 까닭에 일단 그것을 중심으로 직역했다. 

이미 김영묘金泳墓는 바이두 백과사전에 올랐으니 자세한 사항은 일단은 이를 참조했으면 싶고, 저에 대한 상세한 정리는 후일을 기약한다. 
 
https://baike.baidu.com/item/%E9%87%91%E6%B3%B3%E5%A2%93/65767775

金泳墓

金泳墓是唐代新罗质子金泳的墓葬,位于陕西省西安市雁塔区东姜村。2022年4月至6月,陕西省考古研究院在该地考古发掘中发现该墓,2025年6月《陕西西安唐新罗质子金泳墓发掘简报》正式公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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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泳墓是唐代新罗质子金泳的墓葬,位于陕西省西安市雁塔区东姜村。2022年4月至6月,陕西省考古研究院在该地考古发掘中发现该墓,2025年6月《陕西西安唐新罗质子金泳墓发掘简报》正式公布成果 [1] [3] [6] [9]。墓葬为长斜坡墓道带天井的单室土洞墓,出土陶俑、陶塔式罐、铜钱及青石墓志等83件(组)器物 [3-5] [7]。

김영묘는 당나라 신라[개자슥들 꼭 표현이 이래?]의 인질왕자 김영의 무덤으로, 섬서성 서안시 응탑구雁塔区 동강촌东姜村에 위치한다.

섬서성고고연구원은 2022년 4월부터 6월까지 해당 유적 발굴 작업을 진행해 김영묘를 발견했다.

2025년 6월에는 "산시성 시안시 신라 인질왕자 김영묘 발굴 간략보고서陕西西安唐新罗质子金泳墓发掘简报"를 통해 발굴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김영묘는 긴 경사 통로와 안뜰이 있는 단일 석실 토굴릉长斜坡墓道带天井的单室土洞墓이다. 발굴된 유물은 도기 인형陶俑, 도기 탑 항아리陶塔式罐, 동전, 청석 묘지青石墓志 등 83점이다. 

金泳生于唐天宝六载(747年),贞元十年(794年)卒于长安,终年48岁,系新罗圣德王金兴光堂兄金义让之孙,家族三代以质子身份留唐宿卫。其生前两度任副使参与唐廷对新罗的吊祭册封,官至新罗蕃长,负责管理侨民事务,为史料记载唯一担任此职者 [1] [4] [8-9]。墓葬志文记载其夫人为太原王氏偃师县令王千龄之女,子嗣中有人应明经举 [4] [6]。该墓志系首例经科学发掘的新罗王族质子墓志,印证了唐代“质子宿卫”制度的延续性及新罗在唐纳质子数量最多的史实 [2] [8-9]。
2025年9月4日,陕西省考古研究院发布多项重要考古成果,包括西安发掘唐代新罗质子金泳墓,为外蕃贵族葬制研究提供新线索。 [10]

김영은 당나라 천보天宝 6년(747년)에 태어나 정원贞元 10년(794년)에 장안에서 4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라 성덕왕圣德王 김흥광金兴光의 당형堂兄인 김의양金义让의 손자다.

그의 가문은 3대에 걸쳐 당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는 당나라 조정의 조문 책봉식에 신라 부사副使로 두 차례 파견되었고, 신라번장新罗蕃长으로 재당 신라인 관련 업무를 맡았다.

묘지에는 그의 아내가 태원왕씨太原王氏로 언사현령偃师县令 왕천령王千龄의 딸이라 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은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

이 묘지는 과학적으로 발굴된 최초의 신라 왕실 인질 비문으로, 당나라의 "인질 경비" 제도의 연속성과 신라가 당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질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2025년 9월 4일, 섬서성고고연구원은 시안에서 당나라 인질이었던 신라 김영의 무덤 발굴을 비롯한 여러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을 발표하여 외국 귀족 매장 제도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좀 더 다채로운 도판을 가미한 소개는 아래를 참조하라 
 
https://baijiahao.baidu.com/s?id=1842417706899786323&wfr=spider&for=pc

考古新发现|雁塔区发现唐新罗质子金泳墓 墓志揭示其祖孙三人皆在唐为质

  项目负责人夏培朝介绍:“唐新罗质子金泳墓北距长安城外郭城城墙只有两公里。这是一个长斜坡、单天井的单室土洞墓,盗扰比较严重,棺椁已不存在了,也没有发现人骨。但还是发现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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