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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고문, 위원장과 위원을 다 합치면 11명이었다.
그중 김종한(1844-1932)이 53세로 가장 나이가 많고
그 다음이 지천명을 갓 넘긴 김가진(1846-1922)이었다.
위원장 이완용(1858-1926)과 현흥택(1858-1924)은 아직 마흔이 안 되었고
회장 안경수(1853-1900), 이상재(1850-1927), 권중현(1854-1934)은 그보다 약간 위.
고문 필립 제이슨-곧 서재필(1864-1951)은 이채연(1861-1900), 이근호(1860-1923)보다도 젊었다.
제일 어린 이는 스물일곱살 민상호(1870-1933)였다.
글을 읽다가 흥미로워서 적어둔다(어떤 부분이 흥미로운지는 논외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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