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터비 맨 Osterby Man 은 20세기 가장 흥미로운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1948년 5월 26일 독일 오스터비 Osterby 마을 근처 동남부에서 습지를 개간하던 농부가 현재의 지표 65~70cm 아래 지점에서 발견한 이 철기시대 늪지 미라 bog body 는 많은 이를 매료케 한다.
[발견지점]
https://geohack.toolforge.org/geohack.php?pagename=Osterby_Man¶ms=54_26_51_N_09_46_09_E_
지금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Schleswig-Holstein 州 슐레스비히 Schleswig 고토르프 성 Gottorf Castle 에 있는 주립 고고학 박물관 State Archaeological Museum 에 모신 이 분은
무엇보다 신체 보존상태가 놀랍도록 좋아 철기시대 게르만 부족 사이에서 유행한 수에비 매듭 Suebian knot 으로 여전히 묶인 그의 머리는 당시 패션을 생생하게 엿보게 한다.
머리 오른쪽 상단 독특한 상투 topknot 는 그의 부족 소속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기도 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게르만 역사 격동기인 서기 75년 무렵 오스터비 맨은 사망했다.
이 시기 로마 영향이 게르만 영토 전역으로 퍼져 문화 교류와 갈등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의 죽음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그의 시신 상태를 보면 그가 게르만 부족을 포함한 여러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관습이었던 제사 의식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의 양호한 신체 상태를 통해 귀중한 과학적 데이터를 얻는다.
늪지라는 환경이 제공하는 저산소 조건이 부패 과정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피부와 내장까지 보존했다.
그의 유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 식단과 건강에 대한 세부 정보가 밝혀졌다.
동위원소 분석 isotopic analysis 은 주로 육상에서 얻은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제안한다.
이는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음을 의미하며, 그 지역 철기시대에 주요 작물이던 보리, 밀과 같은 곡물로 구성된 식단을 섭취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소, 양, 돼지와 같은 가축을 포함하여 육류 소비도 상당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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