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정부가 남대문을 필두로 지역별로 국보니 사적이니 보물을 지정할 적에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당시까지만 해도 꼽힌 상태로 있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지정 당시 명칭은 찾아봐야겠지만 현재는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라는 이름으로 국보 제3호로 지정됐다.
당시 서울 소재 문화재들을 가장 앞 순서를 배정했거니와, 다른 뜻 없다.
문제는 1972년 8월 17일, 현장에 두었다간 비바람 혹은 다른 재해에 파괴될 위험이 있다 해서 당시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박물관으로 저 비석을 뽑아 옮기면서 시작됐다.
어떤 멍청한 놈들 짓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비석 몸둥아리만 국보로 지정했다 해서, 그 몸뚱아리만 그대로 국보 지위를 유지하고는 본래 있던 자리, 곧 저 비석을 받침한 대좌臺座 혹은 그것을 포함하는 주변 경관 일대는 국보 지정 대상에서 누락하고 말았다.
그 본래 있던 자리에는 모조 비석이 들어섰으니 아래가 그 풍광 중 하나다.

본래 비석이 있던 자리를 받침하던 그 바위를 잘 봐주기 바란다.
본래 자연 바위를 3단으로 깎았음을 본다.
3단으로 단을 지어서 깎고는 그 복판에다 홈을 파고선 비석을 내리 꽂은 것이다.

본래 있던 자리 다른 사진 하나를 더 보자.
보다시피 저 비석 대좌가 우뚝하다.
나아가 저 3단으로 깎은 저 부분만 아니라 저 바위 전체, 나아가 주변 경관 전체가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라는 문화유산을 구성하는 절대 요건이다.
그래 주변 너무 확대하면 너무 커지므로 저 대좌에만 국한해도, 저 대좌는 진흥왕 순수비 일부가 아니란 말인가?

원주 법천사지에 있는 고려 초 지광국사 현묘탑비다.
저 탑비는 거북 모양 대좌[비좌碑座라고도 하지만 거북 모양 똬리를 틀었다 해서 귀부龜趺라고도 한다]와 몸뚱이인 비신碑身, 그리고 이무기나 용 문양을 넣은 모자에 해당하는 귀수螭首 세 가지는 필수 구성 요소다.
이 셋을 합쳐 우리는 비석이라 부른다.
어떤 얼빠진 놈도 저 거북 대좌 빼버린 나머지만을 국보라 하지 않는다.
비봉 순수비의 경우 머릿돌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망실됐다. 그래서 비 몸뚱이랑 의자만 남았다,
이 몸뚱이랑 다리에 해당하는 의자를 합쳐 우리가 말하는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가 비로소 성립한다, 비좌가 없으면야 모를까 저리 멀쩡히 지금도 살아있지 않은가?
한데 당시 얼빠진 놈들이 뽑아다 놓은 몸뚱이만 덩그러니 국보라 하고, 현장에 남은 그 대좌는 국보가 아니라 하고 말았으며 그것이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가 없는 어떤 사람을 몸뚱아리만 그 사람이라 하고 다리 이하는 짤라버린 것과 같다.
저는 명백한 행정 착오다. 그래 그땐 무식해서 그랬다 하자.
하지만 21세기 백주대낮인 지금까지 그래야겠는가?
착오임이 드러났으면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 있는 비신과 현장에 남은 비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저 순수비 국보는 재조정이 시급하다. 순수비 1이라 해서 비신을 조정하고, 현장에 남은 비좌는 순수비2라 해서 일련으로 지정해야 한다.
뭐 입만 열면 분단국가 타령 일삼는 자들이 문화재는 저딴 식으로 강제로 북북 찢어놓았으니 누구더러 무엇을 삿대질한단 말인가?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독설고고학] 잔류물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데서 學은 없다 (0) | 2026.03.24 |
|---|---|
| 기차 떠난 뒤 시민을 호명한 BTS와 하이브, 오직 아미만 있었다 (0) | 2026.03.23 |
| 조용필 나훈아를 원한 국민, 글로벌 스타를 환호하는 아미ARMY, 그 건널 수 없는 간극 (0) | 2026.03.22 |
| 서울신문 코리아나호텔을 각인한 BTS 광화문 컴백 공연, 그 특혜할 시비를 어찌 대처할 것인가? (0) | 2026.03.22 |
| RM 다리 부상이 전체 구도를 흔든 듯한 BTS 컴백 공연 (0) | 2026.03.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