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절이 좋아져서 이제는 AI 증폭 기술을 활용하면 그 시절 해상도 구린 사진도 증폭하는 시대라,
이것도 유료 비싼 버전을 이용하면 좀 더 나은 증폭 사진을 얻게 되지마는 그런 대로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한다.
이 사진은 이전에 이미 소개하기는 했지마는 나로서는 그런 대로 의미가 있다 해서 소장하는 사진이라
2000년 12월 14일자로 내가 당시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송고한 한 장면이라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한 앗시리아학[요즘 외래어 표기로는 아시리아라 하지마는 앗시리아가 원음에 더 가깝다] 전공자 조철수(왼쪽) 당시 서강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가 그달 21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에서 학부 시절 스승이기도 한 연세대 신학과 한태동(77) 명예교수와 담소하는 한 장면이라
두 분 다 이제는 고인이 되고 말았다.
한태동 선생 역시 이후 간헐로 소개했듯이 이 분은 연세대 재학생들한테는 신화적인 존재라, 인품 학품 모두 극강을 구가한 양반이다.
이제는 이 고대 근동학도 이미 늙다리가 즐비한 시절이 되었지만[그 수괴쯤 되는 주원준 박사만 해도 좀 있으면 환갑이다], 고대근동학을 표방하는 일군이 국내에는 있어 쪽수 얼마 되지 아니하나 응집력 있게 움직이거니와, 그네들한테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두 분이 바로 조철수 한태동 선생이라
한태동 선생한테서는 아마 직접적인 훈도를 받지 아니했을 공산이 큰데, 반면 조철수 선생은 연배로 봐도 지금 한창 활동하는 고대근동학 무리들의 뿌리 비슷한 그런 위상을 지닌 분이었다.

지금도 가장 안타까운 점이 이 조철수 선생이 한창 활동할 그 무렵에 불치하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스러져 갔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나는 몹시도 안타깝기 짝이 없거니와, 짧은 만남에서도 나한테 감동을 준 분이라, 계속 기억에 남는다.
공부가 무엇인가? 그 전범을 보여준 사람이다.
저 한태동 선생은 내가 따로 챕터 하나를 정리해야 할 것이 한국고고학이 있게 한 후견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자생 고고학은 1963년 첫 삽을 뜬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에서 시작하는데, 그 후견인이 한태동 선생이다.
당시 이 발굴은 순전히 학교 예산으로만 했으니, 왜 학교에서 돈을 대느냐는 반대를 뚫고서 끝까지 손보기 선생을 지지하고 그 뜻을 관철케 한 절대하는 후견인이 바로 한태동 선생이었다.
고대 근동학자 조철수
고대 근동학자 조철수
몇년 전이던가? 아님 그보다 더 오래됐을 수도 있다. 아래 기사에서 다룬 조철수 박사 근황이 궁금해 지인들한테 물어보니, 타계했다 해서 놀란 적 있다. 참 아까운 인재다. 기독신학을 고리로
historylibrary.net
이 시대 영원한 우상 한태동 선생
https://historylibrary.net/entry/3-146
이 시대 영원한 우상 한태동 선생
이제 환갑을 코앞에 둔 내가 직접 만나 겪은 사람 중에 천재라는 느낌을 준 분은 딱 이 분뿐이다. 한태동. 일반에는 덜 알려졌지만, 연세대 신촌캠퍼스 출신들한테는 신화적인 존재다. 왜 신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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