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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톨렌제 계곡, 3천200년 전 발트해를 피로 물들인 전장

by taeshik.kim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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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이 담은 독일 북부 톨렌제 계곡 청동기시대 전쟁은 앞서 우리가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기사 말미 링크 참조)

다시금 상기하는 의미에서 복습을 겸해 정리한다. 

흔히 기원전 1천200년 전, 그러니깐 대략 지금으로부터 3천200년 전 발트해 인근에서 벌어진 저 잰쟁을 비슷한 시대 지중해변에서 있었다는 트로이 전쟁에 견주어 발트해 트로이[Baltic Troy]라 일컫기고 한다. 

지금의 폴란드-독일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톨렌제 강 Tollense river 기슭 근처에서 고고학도들이 3300년 전에 벌어진 거대한 전투 흔적을 발견했다.

당시 이곳은 흔히 말하기를 고대 문명 외곽이었고 소수 원시 부족만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믿었기에 이 고고학 발견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톨론제 계곡 유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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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200년 전, 발트해로 흘러드는 이 강에서 두 군대가 충돌했다. 물론 이 시대 이쪽은 선사시대인 까닭에 이 전쟁에 대한 그 어떤 증언도 역사는 남기지 않았다.

이 전투는 그 무렵 흔했을 지역 씨족 간 전투가 아니었다는 데 심각성이 도사린다. 양 측을 구성한 수천에 달하는 전사가 당시 군사 기술로는 정점이었을 각종 나무, 돌칼, 그리고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장착하고선 아마도 하루 동안 싸운 잔인한 전쟁이었다.

맨 앞에서 제시한 각종 유물이 바로 그 잔인한 전투가 남긴 증언들이다. 

 

전투현장. 죽기 딱 좋은 곳이다.

 

북부 독일 습지를 통과해 발트해를 향해 흐르는 좁은 물줄기인 톨렌제 강 유역에서 견고한 기반을 찾고자 고군분투한 두 군대는 백병전을 벌이면서 참혹하게 몽둥이, 창, 칼로 상대를 다치케 하고 죽였다.

이 전투에서 청동 혹은 돌로 끝을 장식한 화살이 근거리에서 발사되어 두개골을 꿰뚫고 젊은이들 뼈 깊숙이 박혔다. 고위 전사들이 탄 말은 진흙 속에 쳐박혀 치명적인 창에 맞고 죽었다.

일부 전사는 전장을 도망쳐 달리다가 쓰려지기도 했다. 

 

이런 장비를 장착하고 쌈박질했다.



전투가 끝나자 죽은 전사자 수백 시신이 늪지대 계곡에 널부러져 있었다. 일부 시체는 귀중품을 빼앗긴 채 얕은 연못으로 떠내려갔고 다른 시신은 1~2미터 깊이 강바닥에 가라앉았다.

그 위로 서서히 이탄Peat이 천천히 시신과 해골들을 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참혹한 전투는 이내 잊혀져갔다.

1980년대에 접어들이 사람들이 톨렌제 계곡 주변 강 퇴적물에서 옛날 단검, 칼, 그리고 기타 무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6년 한 아마추어 고고학도가 가파른 강둑에서 튀어나온 팔뚝 뼈 하나를 발견하니 이것이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톨렌제 계곡을 품은 비극을 알리는 첫 번째 단서였다.

 

전쟁의 상흔들

 

돌 화살촉이 뼈 한쪽 끝에 단단히 박힌 상태였기에 고고학도들은 더 많은 뼈, 부서진 두개골, 야구 방망이를 닮은 73cm 길이 곤봉을 발굴할 작은 시굴을 착수하게 된다. 

해당 유적은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기원전 1250년 무렵으로 추정되었다. 유적 혹은 유물은 청동기시대 단일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의 퇴적물임이 드러났다.

두개골도 여러 개 더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는 시굴이었다. 2007년이 되면서 유적 전체에 대한 탐사가 시작했다.

 

천지사방에 박힌 상처들
이런 걸로 쳐죽이고 처죽임을 당했다.

 

지난 10년간 이 전쟁터를 발굴한 성과는 놀라웠다. 각종 군사 장비와 말뼈 사이에서 수습한 유골만 140명 개체분. 그 대부분 20~40세 남성이었다.

이 새로운 발견들은 무엇보다 전사들이 고국에서 전장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결집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 군대를 조직한 범위를 어떤 사회 조직이 확실히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을 훗날에는 국가라 부른다. 청동기시대 저때 이미 국가 정치체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대규모 이동 사실, 곧 군대 동원 사실은 전장터서 발견된 일부 뼈를 분석했더니 해당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동위원소와는 일치하지 않는 스트론튬strontium 함량으로 밝혀냈다.   

지표 아래 습지에서는 자작나무 손잡이를 포함한 유기물질을 보존했으니 이런 것들을 통해 유적 혹은 유물 연대를 측정했다.

 

그날

 

다이버들이 강 속을 뒤져 화살촉, 드레스 핀dress pins, 뼈 손잡이가 달린 청동 칼, 인간 갈비뼈와 두개골을 포함하여 전투가 남긴 더 많은 잔해를 발견했다. 모든 발견 날짜는 기원전 1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 남쪽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끝단 트로이에서 전쟁이 벌어질 그 무렵, 저 발트해변에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3천300년 전 중부 유럽의 백마고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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