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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기독교 신앙촌으로 변모한 아크나텐 왕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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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은 기원전 14세기에 파라오 아크나텐Akhenaten이 건설한 고대 이집트의 찬란했던 수도 아마르나Amarna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했다.

고대에 아크나텐Akhetaten으로 알려진 이 도시는 태양신 아텐Aten에게만 바쳐진 혁명의 수도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전통적인 이집트 다신교polytheism에서 극적인 이탈을 상징했다.

약 15년 ​​동안 아마르나는 인상적인 사원, 궁전, 행정 단지를 갖춘 정치 및 종교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그러나 아크나텐이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 투탕카멘은 아마르나를 버리고 왕궁을 테베Thebes로 되돌렸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역사가들은 아마르나가 영원히 버려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니아 관광 및 호스피탈리티 연구 저널(Minia Journal of Tourism and Hospitality Research)에 발표된 최근 연구들은 아마르나 역사의 잊혀진 한 장을 밝혀냈다.

바로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 수도원 중심지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아마르나 지역 무덤들, 특히 북쪽 절벽 지역 고고학 발굴을 통해 서기 5세기와 6세기 수도원 정착지 흔적이 발견되었다.

파라오 신전의 웅장함과는 달리,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은 암벽을 파서 만든 무덤rock-cut tombs을 골라서 소박한 수도원, 교회, 작업장으로 개조했다.

6번 무덤으로도 알려진 파네시 무덤Tomb of Panehsy에서는 붉은 십자가, 새, 독수리로 장식된 앱스apse가 있는 작은 교회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집트 초기 기독교에 깊이 뿌리내린 상징이다.

튀니지, 시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입된 암포라를 포함한 유물들은 이 시기에 활발한 무역을 시사한다.

조리 용기, 베틀, 조각된 저장 공간과 같은 유물들은 고도로 조직적이고 자급자족적인 수도원 생활 방식을 시사한다.

이러한 물질 문화는 아마르나의 신성한 사막을 새로운 영적 풍경으로 변모시킨 수도사들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마르나에 수도사들이 머물게 된 것은 정치적 망명이나 박해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독과 영적 정화를 추구하는 사막 수도원주의의 이상에 이끌려 이 외딴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나일 계곡 위로 솟아오른 무덤과 절벽은 신성과 속세를 구분하는 경계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수도사들은 아마르나를 단순한 은둔처가 아닌 영적 저항과 재생의 장소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아마르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종교적 혁신에 대한 덧없는 파라오 시대의 실험에서 벗어나 이집트 기독교 고고학의 오랜 중심지로 그 역사적 의미를 확장한다.

이곳은 아테니즘Atenism 과 기독교라는 두 가지 뚜렷한 종교 혁명이 수 세기에 걸쳐 같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드문 사례다.

Ahmed Fathy Saddik, Samar Mostafa Kamal, Walaa Mohamed Abdekhakim (2025), Life at Amarna during the late Roman Period. Minia Journal of Tourism and Hospitality Research, vol.19, no.2. DOI:10.21608/mjthr.2025.383481.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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