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년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발굴한 부여 관북리 유적 현황이다.
조사시기가 다를 것임에도 저리 한꺼번에 노출된 이유는 아마도 합성 때문이 아닐까도 하는데 혹 아닐 수도 있다.
도판에서 잘 보일지 모르겠는데 보는 사람 기준 오른편 위쪽에 횡적이라 해서 피리가 출토한 똥통이 보이고
그 사선 반대편 왼쪽 아래 지점으로 빗금 배수로가 보이는데 이쪽에서 목간이 집중 출토됐다.
저 목간이 출토됐다는 배수로 부문만 확대하면 아래와 같다.

목간이 출토한 지점이 붉은색이라, 이걸 보면 물살이 반대편으로 흐르면서 배수로 위쪽으로 토사가 쌓였음을 것임을 추찰한다.
발굴 대상지를 벗어나는 지점에도 목간이 나왔으니 아마 이쪽 어딘가에 하수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에서 수습한 것들 중 이른바 물품꼬리표 혹은 그리 추정된다 해서 이렇게 묶음했을 텐데 일부는 약재류 아닌가 싶고 인현仁賢이니 하는 판독은 새로 들여다 봐야 한다.

문제는 이것.
하필 경신년 계해년을 540년, 543년이라 봤을까?
저리 본 이유를 조사단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발굴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이자 백제 사비기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평가되는데,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 출토되었으며, 간지년이 기록된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며, 이는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의 시기이다.
저 배수로가 사비 천도 무렵에 만든 것이므로 이에서 출토한 것들은 사비 천도 시기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을 잡은 것이다.
웅진을 떠나 부여로 천도한 시점이 538년(성왕 16년)이니, 저 목간은 그 직후 어느 시점이라 해서 저리 본 것이다.
이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저 배수로가 진짜로 사비천도 무렵에 만들어 운영한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배수로가 운영된 기간이 60년이 채 되지 않았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저 연대 추정은 신빙성을 갖추게 된다.
저 배수로는 도면으로 보면 자연 도랑이 저리 날 수는 없어 인공수로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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