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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석성산과 보개산, 그리고 할미산성

by 서현99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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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鎭山)이란 국가, 도읍 또는 각 고을을 뒤에서 진호(鎭護)하는 큰 산을 일컫지만 일반적으로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을 말한다. 용인의 진산(鎭山)은 포곡읍과 동백동에 걸쳐 있는 해발 471m의 석성산(石城山)이다.

할미산성에서 바라본 석성산 정상


석성산은 말 그대로 ‘돌로 쌓은 성이 있는 산’이란 뜻이고, 그 정상부에는 ‘석성산성’이 남아 있다. 이러한 석성산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보개산(寶蓋山)이라는 명칭이 있는데, 이로 인해 석성산성을 보개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석성산 북쪽에 해발 349m의 선장산(禪長山)이란 이름의 산에도 석성이 남아 있는데, 바로 할미산성(노고성)이다.

석성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할미산성


석성산성(보개산성)과 할미산성은 직선거리로 약 2km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관계로, 그리고 모두 석성이라는 점에서 고지도, 지리지 등에서 두 산의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1530) 龍仁條 山川條에 ‘寶盖山 在縣東十三里’, 禪長山 在縣東北十五里’(보개산은 현의 동쪽 13리에 있으며, 선장산은 현의 동북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보개산과 선장산이라는 별개의 산이 존재하며 보개산의 북쪽 2리에 선장산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烽燧條 에는 ‘寶盖山烽燧 東應竹山縣巾之山 北應廣州穿川峴’(보개산봉수는 동쪽으로 죽산현 건지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광주 천천현에 응한다.), 古跡條에는 ‘寶盖山城 石築周二千五百二十九尺 今皆頹圮’(보개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529척이며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로 보아 보개산에는 봉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봉수의 전모가 확인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석성산 봉수’가 바로 그것임은 틀림없다.

경기도 기념물 227호로 지정된 석성산 봉수터


『大東地志』(1863) 龍仁條 山水條에서는 ‘寶盖山 一云石城山東十三里, 禪長山 東北十五里’(보개산은 석성산이라고도 이르며 동쪽 13리에 있으며, 선장산은 동북쪽 15리에 있다.)라고 하여 보개산과 석성산을 동일한 산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大東地志』 城池條에서 ‘寶盖山古城 俗稱姑城 地形險要 … 周二千五百二十九尺, 禪長山古城 有遺址’(보개산의 고성은 속칭 ‘할미성’으로 불리며 지형이 험하고… 둘레가 2,529척이며, 선장산 고성은 옛터가 남아 있다.) 라고 하였는데, 보개산과 선장산에 모두 古城이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과 ‘보개산에 있는 古城이 ‘姑城(할미성)’이라는 내용이 주목된다.

선장산 고성, 할미산성 북측 성벽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1. 보개산과 선장산은 별개의 산이며, 두 산 모두 古城이 존재하고 보개산에는 봉수가 있다.
2. 보개산은 현의 동쪽 13리에 있고, 선장산은 이로부터 2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3. 보개산은 석성산이라고도 불린다.
4. 보개산 古城은 속칭 ‘할미성’이라고도 불린다.

이를 현재까지 보고된 석성산성과 할미산성의 관계에 대입시켜 보면 석성산성의 내부에는 석성산 봉수가 존재하며 석성산성의 북쪽으로 할미산성이 위치하므로 보개산성은 현재의 석성산성에 해당하고 할미산성은 선장산 고성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런데 각종 기록에 등장하는 보개산성의 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문헌자료에 보개산성의 둘레는 2,529척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당대의 도량척인 營造尺(31.22cm)으로 환산하면 약 780m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현재 석성산성의 둘레는 약 1,650m, 할미산성의 둘레는 약 660m 내외로 보고되어 있으므로 보개산성의 둘레와 석성산성의 둘레가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할미산성의 크기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대동지지』의 ‘보개산에 있는 古城이 ‘姑城(할미성)’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현재의 할미산성이 보개산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봉수’가 있는 산은 분명 석성산, 즉 보개산이므로 석성산성이 보개산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보개산성에 대한 기록과정에서 성곽의 계측이 잘못 되었거나 할미산성의 크기를 보개산성에 오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보개산성의 명칭이 할미산성에서 석성산성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후기 회화식 지도 가운데 팔도군현지도(1724~1776), 해동지도(1750년대), 청구도(1834), 청구요람(1834) 등에서 보개산과 석성산 명칭이 각각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팔도군현지도, 보개산, 석성산, 신장산(선장산)이 모두 표기되어 있으며, 봉수가 보개산에 표기되었다.
청구요람(1834), 보개산, 석성산이 모두 확인되며 봉수가 석성산에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 봉수가 석성산에 표기되었고 보개산은 보이지 않는다.


이 중 팔도군현지도를 제외하면 비교적 이른 시기의 지도에는 석성산에 봉수가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청구도(1834), 경기지(1842), 대동여지도(1861), 경기읍지(1871) 등 19세기 말 지도에서는 석성산 명칭은 사라지고 보개산만 표시되었으며 보개산에 봉수가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경기지(1842), 석성산은 사라졌고 보개산만 표기되었으며 보개산에 봉수를 표기했다.
경기읍지 용인현지도(1871), 마찬가지로 석성산은 보이지 않는다.


회화식 지도 작성 이전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내에서도 보개산과 선장산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고, 경기지(1842) 이후에는 선장산과 보개산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후기의 어느 기간 동안 보개산, 석성산 명칭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점차 석성산보다는 보개산으로 명칭을 통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회화식 지도 내 석성산, 보개산, 봉수 표기 현황(할미산성 종합정비계획 보고서 수록)


이후 1910년대 그동안 사라졌던 석성산 명칭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 현재 석성산이 공식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수치지형도. 석성산 정상에 산성이 표시되었으며, 맞은편 할미산성은 산의 이름은 없으나 성곽이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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