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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굴조사보고서] 연천 무등리 1보루 정밀 발굴조사보고서 《연천 무등리 1보루 정밀 발굴조사보고서漣川無等里第一堡壘精密發掘調査報告書》 연천군·서울대학교박물관, 2019 유적은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무등리 산 41번지 임 일대 작은 봉우리인 '장대봉' 정상부에 위치한다. 동쪽에 임진강을 끼고 북쪽과 남쪽에 무등리 2보루와 1보루가 나란히 위치하는데, 두 보루 모두 내부에서 임진강 건너편 움직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구는 석축 성벽과 기둥 구덩이로 성벽을 축조하며 나무기둥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고구려 토기와 철기, 기와 등이다. 유적 연대는 550~600년에 집중된 모습으로 석축성벽은 6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정된 조사결과로 볼 때, 무등리 1보루는 관청 등 건물이 위치했고, 무등리 2보루는 곡물 저..
아차산 홍련봉 제1,2보루 발굴조사 보도자료 광진구청(구청장 김기동)이 발주하여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홍종)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사적 제455호 아차산 일대 보루군(홍련봉 제1․2보루) 2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12월 3일(화) 오후 3시 조사 현장에서 개최한다. 홍련봉 제1보루와 제2보루는 2004년과 2005년도에 각각 내부 건물지를 중심으로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추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복토 후 임시보호 중이었다. 2012년 7월 광진구청에서 문화재 복원정비를 위한 자료 확보를 위하여 발굴조사를 의뢰하였고, 2013년 4월 1차 조사가 마무리되어 홍련봉 제1보루와 제2보루에서는 고구려의 성곽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흔적들이 확인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홍련봉 제1보루 성벽을 전면 노..
광진 아차산 홍련봉 제1,2보루 발굴조사 보도자료 2013년 4월 19일 서울 광진구 보도자료 고구려의 새로운 성곽 구조 확인!아차산 홍련봉 제1,2보루 발굴조사 설명회 - 광진구, 오는 23일 오후 2시 아차산 홍련봉 발굴현장서 ‘홍련봉 1,2보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실시 - 기존에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고구려의 성곽 구조가 확인되는 등 향후 6세기 전반 고구려 군의 조직과 운영 및 고구려의 남진경영과 관련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 과거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이며 고구려의 군사기지였던 서울 광진구 아차산 남쪽 기슭의 홍련봉 제1·2보루(소규모 부대의 주둔위한 작은 규모의 성곽) 발굴조사 결과 새로운 고구려의 성곽 구조가 확인됐다고 광진구가 19일 밝혔다. 광진구(구청장 김기동)는 오는 23일 오후 2시 사적 제455호 아차산 일대 보루..
동맥경화에 탈진에, 고구려는 피곤하다 2005.03.31 08:32:57 '동맥경화' 걸린 고구려(2005.3.3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요즘 고구려가 짜증난다. 더 엄밀히 말해 그 연구가 짜증난다. 중국이 동북지방 경제개발을 위해 추진하는 소위 '동북공정'에 고구려를 자국사로 편입시키려는 노골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 해서 국내에서는 이에 분개한 반(反)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잇따랐고 현재도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 성과물이 지난해 3월에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 결성이다. 이 거창한 기구 출범만이 아니라 그에 즈음해, 또 '동북공정'이 국내에서 이슈화하고 난 지난 약 2년 동안 ‘고구려 구출’을 표방한 각종 행사가 봇물을 방불할 만큼 이어지고 있다. 그에 동반해 고구려 관련 출판물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역사상 이와 같은 ‘고구..
도(騊) 王莽의 新 왕조가 참살했다는 고구려 초기 왕이다. 이런 내용은 『漢書』 王莽傳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다만 이곳에서는 추(騶)로 표기했다. 표제는 『三國志』에 등장한다. 두 글자는 모양이 비슷한 데서 따라 혼동이 일어난 듯하다. 두 표기 중 전자가 오래된 문헌이라 해서 이쪽을 따르는 견해가 우세하나, 이는 위험하다. 전대 기록을 후대 기록에서 바로잡는 일은 흔한 데다, 후자가 참고한 전자 판본에는 그렇게 되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三國志 권30 魏書 30 東夷傳 高句麗 : 王莽 初에 고구려 군사를 징발하여 胡(匈奴)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胡를 정벌하러] 가지 않으려 하여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도망하여 국경을 넘은 뒤 [중국의 군현을] 노..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3-] 도미 부인의 기지 정절 탐하는 개로왕에게 월경 핑계 대고 도망쳐[중앙선데이] 입력 2017.06.04 01:44 수정 2017.06.04 16:23 | 534호 23면 서기 475년. 이 해는 백제 제21대 개로왕(蓋然性鹵王) 재위 21년째요, 고구려는 100세 장수를 누린 장수왕 재위 63년째가 되는 해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본기를 보면 “(가을 9월에)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를 들이쳐 그 왕이 도읍한 한성(漢城)을 함몰하고 백제왕 부여경(扶餘慶)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포로로 삼아 돌아왔다”고 돼 있다.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까닭에 왕족은 부여를 성씨로 삼았다. 부여경이란 개로왕의 이름이다. 500년 사직이 거의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백제는 신라의 도움을 얻어 허겁지겁 남쪽으..
시신 도굴 미천왕, 그 영광과 비극 기사) 시신 도굴 미천왕, 그 영광과 비극 “고조가 아니라 증조다 기사 내용 수정 바람 미천왕은 광개토대왕의 증조부임 미천왕의 아들이 고국원왕이고 고국원왕의 둘째아들이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이다 고조는 개뿔 고조는 미천왕의 아버지인 돌고가 고조임 수정 바람” 이 지적이 맞다. 아래 계보에서 보듯이 광개토왕에게 미천왕은 증조다. 고조라는 내 기사는 오류다. 미천왕 – 고국원왕 - 소수림왕 고국양왕 – 광개토왕 – 장수왕 시신 도굴 미천왕, 그 영광과 비극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최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부친 묘 도굴사건은 지금으로부터 꼭 1657년 전인 고구려 고국원왕 12년, 즉 서기로는 342년 2월(양력으로는 3월)에 일어난 고구려 미천왕 시신 도굴사건과 흡사 닮아있다. 우리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