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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천리장성3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왜 쌓았을까? 역사상 장성은 여러 문명권에서 여러 번 있었다. 잘 아는 중국 전통왕조의 만리장성, 우리 고려시대의 천리장성 (여진족에 대하여 쌓은)그리고 심지어는 로마가 브리튼과 게르만에서 쌓은 장성에 이르기까지. 이런 장성들은 특징이 있다.  공격에 대한 방어의 이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편과 저편의 분리이며자기 영토안을 자꾸 침투해 들어오는 이민족과 우리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함이 더 크다는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고구려의 천리장성이 요하 유역에 저렇게 지어놓는 것이 장성의 용도에 충실한 축성이었을까? 중국으로부터의 침투는 슬금슬금 이민족이 흘러들어와 점유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대규모 군사공격에 의한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고구려 천리장성이 연변지역에 축조되었다면이는 당시 말갈과 이쪽을.. 2024. 6. 24.
천리도 아니고 흔적도 없는 고구려 천리장성 간단히 써 보면 지금 추정하는 고구려 천리장성은 위 지도에서 빨간색 선인데 (파란선은 고려시대 천리장성), 문제는 이 장성이 있었다 해도 너무 길어서 천리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장성이라 볼 만한 흔적이 제대로 발견된 바 없다. 왜 요하유역에서 천리장성이라 볼 만한 것이 없는가 하는데 대해 설왕설래 말이 꽤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 시대로 소급가능한 장성 유적이 나오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어딘가 하면, 바로 연변에 있다는 800리 짜리 고구려 장성이다. 삼국사기에는 천리장성과 관련하여 이렇게 적어놨다. 王動衆築長城 東北自扶餘城 東南至海千有餘里 부여성에서 바다를 향하여 동남방으로 천여 리라고 되어 있다는 말이다. 부여성에서 동남방으로 천여 리라면 결국 연변지역 이 장성이 눈에 걸릴 수 밖에 없다. 2024. 6. 24.
연변장성의 성격 국학연구소 임찬경 선생 글이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어 여기에 옮겨 둡니다. "위에서 연변장성의 건축 주체와 연대에 대한 학계의 여러 쟁점을 槪觀해 보았다. 연변장성에 대한 명확한 문헌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고, 장성에 대한 발굴조사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므로, 장성의 건축 주체와 연대의 批正은 앞으로 더 진전된 조사와 연구를 기대해야 할 상황이다. 단지 1980년대 초부터 진행되어 온 연변 현지의 기존 조사 자료와 연구 성과들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연변장성이 고구려 시기에 이 지역 토착세력인 북옥저에 의해 그 북쪽 정치세력인 읍루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고 볼 蓋然性이 높다. 물론 이 경우에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된 장성은 고구려 이후 시기에 이 지역에 존재했던 발해와 東夏國 및..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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