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려6 저놈을 물에 빠뜨려 고기밥을 만들어라 를 보면 유달리 '물에 던져버리는' 형벌이 많다. 허리가 꺾여 가마솥에 들어가 물에 던져진 의종, 동지들과 함께 묶여 강물에 던져진 만적, 유배를 가다가 바다에 던져진 김경손, 길흉을 잘 점친다고 바다에 던져진 백량...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팽형 빼고) 물에 풍덩 던져지는 형벌이 없었다. 삼국시대에도 가죽 주머니에 담겨 물에 던져진 관나부인이나 동짓달 얼음물에 목욕하다 얼어죽은 익선의 아들 정도밖에 모르겠는데, 유달리 고려시대에 이런 수장형(水葬刑)이 많았던 것은 어떤 이유일지? 인류학적으로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지? (2015. 10. 25. 작성한 글을 2022.10.25. 약간 보완) 2022. 10. 25. [방송예고]JTBC다큐플러스<처인성 전투, 그날의 영웅을 찾아서> [방송예고]JTBC다큐플러스 용인의 고려시대 대표 유적지인 서봉사지, 서리고려백자요지, 그리고 처인성!🤩 대몽항쟁 최고의 승전지, 처인성! 작은 토성, 여기서 엄청난 전투가 일어났다? 처인성에 숨겨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처인성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처인성역사교육관!!! JTBC다큐플러스 212회 2022년 4월 24일(일) 오전 8시30분! 많은 시청바랍니다! https://youtu.be/SnN_esMWTsk 2022. 4. 23. 고려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다 27년(1073) 정월에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법전[令典]을 살펴보건대 ‘공장(工匠)과 상인(商人)의 집안은 기술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니, 그들의 업(業)에 전념할 것이며, 관직에 올라 선비[士]와 나란히 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군기주부(軍器注簿) 최충행(崔忠幸)과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 양운(梁惲)은 모두 공장의 외손이며, 별장(別將) 나례(羅禮)와 대정(隊正) 예순(禮順)도 역시 공장의 적손(嫡孫)인데 스스로 조정(朝廷)의 관리[九流]을 흠모하여 그 업을 던져버리고 이미 조정의 반열에 올라왔으니, 다시 공장으로 충원할 수는 없사오나, 바라건대 각자 지금의 직책으로 제한하시고 옮겨 제수(除授)하는 것을 허용하지 마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신해년(1071)에.. 2022. 2. 3. [발굴조사보고서] 홍천 희망리 유적 《홍천 희망리 유적洪川希望里遺跡》 -홍천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주변유적 발굴조사- 강원고고문화연구원江原考古文化硏究院, 2019 유적은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376-26번지에 위치한다. 보물 제80호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조선시대 유적이 드러났다. 당간지주는 땅을 파고 지주가 넘어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 사질점토 등으로 판축하듯 흙을 겹겹이 쌓아올린 후, 대형 석재를 놓고 3단 정도 돌로 쌓았다. 강원도 홍천지역에 소재한 통일신라시대 사찰과 관련된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주변에 위치한 수혈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출토된 암, 수막새는 경주지역과 관련성이 지적된다. 유적이 조성된 시기는 8세기 후반~9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하며, 고려 충렬왕 23년부터 33년(1297~1307)에 .. 2019. 8. 15.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3편 왕건, 죽어도 죽을 수 없던 神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이며 기사 입력시간은 2016년 02월 22일 14시15분이다. 고려를 창건한 신라인 왕건은 고려 왕조를 개창한 까닭에 그 이름만 들으면 우리는 대뜸 ‘고려인’으로 단정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뼛속까지 신라인이다. 그가 태어나기는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이니 이해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877)이다. 청장년기를 신라에서 배반한 궁예에서 복무하기는 했지만, 그가 자발적 헌납이라는 형식으로 신라를 접수한 때가 59살 때인 935년이며, 그로부터 8년 뒤인 943년 향년 67세로 눈을 감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왕건은 신라인이다. 이런 그가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 혹은 국가를 만들 때 그 절대적 토대는 신라의 그것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죽어 묻힌 곳을 현릉(顯..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1편 묻힌 다음날 털린 원 제국 공주의 무덤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이다. 기사 입력은 2016년01월25일 12시16분이다. 근자에 《고려사절요》를 통독하며 고려사 500년을 훑다가 중·말기로 갈수록 짜증 혹은 분노가 치솟는 걸 보니 나 역시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고려가 직접 지배나 다름없는 원나라 간섭을 무려 100년간이나 받으며 왕을 필두로 하는 고려인들이 갖은 굴욕을 감내해야 했던 데다 그 후기에 이르러서는 왜구가 주는 고통까지 덤터기로 썼으니 아마도 이때가 한국사 가장 참혹한 시대가 아니었던가 한다. 이런 감정은 비단 지금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줄로 안다. 굴곡의 근현대 한국이 겪은 참상이 아마도 고려 시대 그때로 오버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역설적으로 나는 한국사가 이때만큼 세계를 향해 더.. 2018. 1. 1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