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김수로6

야유타국阿踰陁國과 황룡국黃龍國, 허황옥을 둘러싼 두 곳의 출자出自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 파트너 허황옥許黃玉을 둘러싼 출자出自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절록切錄한 고려 문종시대 문헌인 《가락국기》가 거론한 아유타국阿踰陀國이 전부였으니, 이는 후대 허왕혹 출신지를 인도로 거론하는 바탕이 된다. 그 근거가 된 대목을 보면 김수로와 첫날을 보내는 날 그 배필이 된 허황옥이 수로한테 하는 다음 말이 그것이니,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 하며 나이는 16살입니다.[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黄玉, 年二八矣.] 유의할 점은 그가 아유타국을 거론했지, 그것이 인도인지 어딘지는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아유타국을 인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한 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 2020. 9. 5.
김수로는 왜 자승紫繩을 타고 강림했는가?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에는 고려 문종(文宗) 때인 대강(大康)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의 문인이 찬했다는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 절록했다는 가야 건국신화를 채록했거니와, 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후한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AD 42) 3월 계욕일(禊浴日)에 그들(9干)이 사는 북쪽 구지(龜旨)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200~3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이자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그 형체는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났다. (중략)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니 구간(九干)이 대답하기를 “구지입니다”고 했다. “皇天이 나에게 명하시길,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려온 것이다. .. 2018. 12. 23.
허황옥(許黃玉) 금관국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비(妃)로서,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48)에 서역(西域)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도착해 수로 배필이 되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천지(天地)가 처음 열린 이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 이름이 없었다. 그리고 또 군신(君臣)의 칭호도 없었다. 이럴 때에 아도간(我刀干)ㆍ여도간(汝刀干)ㆍ피도간(彼刀干)ㆍ오도간(五刀干)ㆍ유수간(留水干)ㆍ유천간(留天干)ㆍ신천간(神天干)ㆍ오천간(五天干)ㆍ신귀간(神鬼干) 등 아홉 간(干)이 있었다. 이들 추장(酋長)들이 백성들을 통솔했으니 모두 100호(戶)로서 7만 5,000명이었다. 이 사람들은 거의 산과 들에 모여서 살았으며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 후한(後漢)의 .. 2018. 3. 19.
조광(趙匡) 금관가야 김수로왕비 허황후가 금관에 도착할 때 왕비를 수행한 신하 중 한 명으로, 금관가야에서는 종정감이었다. 그의 손녀가 3대 마품왕비가 되어 거질미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말씀드렸다. “대왕께서 강림(降臨)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왕의 짝이 되게 하겠습니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옳게 여겨 유사(有司)를 데리고 행차해서,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터에.. 2018. 3. 15.
거등왕(居登王) 금관가야 제2대 왕이다. 김수로와 허황옥 사이에 난 아들이다. 화랑세기 유신공 전 : 금관가야는 수로청예왕(首露靑裔王)에서 비롯하였는데 황룡국(黃龍國)의 여자인 황옥(黃玉)을 아내로 맞아 거등(居登)을 낳았다. 거등은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을 아내로 맞아 마품(馬品)을 낳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대 거등왕(居登王)은 수로(首露) 아들이며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다. 기묘년에 즉위해 55년을 다스렸다. 김씨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그 해에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 기사(己巳·189) 3월 1일에 왕후가 죽으니 나이 157세였다...왕후가 죽자 왕은 매양 외로운 베개.. 2018. 3. 14.
신보(申輔) 금관가야 김수로왕비 허황후를 따라 온 잉신 중 한 명. 그의 딸이 2대 거등왕의 비가 되어 3대 마품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말씀드렸다. “대왕께서 강림(降臨)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왕의 짝이 되게 하겠습니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옳게 여겨 유사(有司)를 데리고 행차해서,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 별포(別浦) 나루터에 배를 대고 육지에 올라 높은 언덕에서 쉬고, 입은 .. 2018. 3.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