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문동 자주색이 빚어낸 환상. 연합DB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에는 고려 문종(文宗) 때인 대강(大康)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의 문인이 찬했다는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 절록했다는 가야 건국신화를 채록했거니와, 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후한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AD 42) 3월 계욕일(禊浴日)에 그들(9干)이 사는 북쪽 구지(龜旨)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200~3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이자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그 형체는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났다. (중략)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니 구간(九干)이 대답하기를 “구지입니다”고 했다. “皇天이 나에게 명하시길,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려온 것이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위에서 흙을 파면서 노래하기를 ‘거북아 거북아 대가리를 빼라. 만일 빼지 않으마 꾸버 먹겠다’라고 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렇게 하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되어 기뻐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구간이 그 말처럼 모두 오르가즘에 빠져 노래를 부르다가 이윽고 하늘을 우러러 보니 자승(紫繩·자주색 새끼줄 혹은 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을 살피니 붉은 보자기 속에 금상자가 있고, 그 상자를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九干等如其言 咸忻而歌舞 未幾 仰而觀之 唯紫繩自天垂而着地 尋繩之下 乃見紅幅裹金合子 開而視之 有黃金卵六圓如日者…)
이에서 보면 6가야를 개창하는 김수로를 비롯한 건국시조가 모두가 紫繩을 타고 天에서 내려와 地에 강림했다고 한다. 예서 핵심은 이들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림한 통로가 자승紫繩, 곧 자주색으로 입힌 새끼줄 혹은 동앗줄이라는 대목이다. 천상에 강림하면서 김수로는 이렇게 말한다.
자주색 맥문동. 연합DB
"황천이 나에게 명하셨다"
천상 세계를 지배하는 천신天神의 절대絶大는 북극성이며, 이를 신격화한 천신을 천황대제天皇大帝, 약칭 천황天皇이라 부른다. 북극성이 내는 빛깔이 바로 자주색이다. 그래서 천황대제가 거주하는 천상의 절대 궁전을 자궁紫宮이라 한다.
김수로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탄강할 때 이를 매개하는 도구가 하필 자승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바로 이에서 풀린다. 김수로는 지상에 강림한 천상의 천황대제, 천황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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