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백옥섬5 눈속 남쪽 가지에 핀 꽃 두세 송이 한시, 계절의 노래(296) 이른 봄[早春] [宋] 백옥섬(白玉蟾, 1194~1229) / 김영문 選譯評 남쪽 가지에 비로소두 세 송이 피었음에 눈속에서 향기 맡으며분바른 모습 즐기네 담백하게 안개 빛농도 짙게 달빛 물드니 깊숙하게 물을 덮고야트막히 백사장 덮네 南枝才放兩三花, 雪裏吟香弄粉些. 淡淡着煙濃着月, 深深籠水淺籠沙. 강원도 일원에 봄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이 밤에 만약 휘영청 달이 밝다면 그야말로 “달빛 희고 눈빛 희고 하늘 땅 모두 흰(月白雪白天地白)” 풍경이 펼쳐지리라. 이른 봄 눈 내린 달밤에 분바른 듯 하얀 꽃을 감상하는 이 시는 묘사가 좀 더 세밀하다. 굳이 패러디하자면 “달빛 희고 눈빛 희고 하늘 땅 모두 흴(月白雪白天地白)” 뿐 아니라 “꽃도 희고 안개도 희고 물과.. 2019. 3. 11. 백로, 거미, 아지랑이, 그리고 달팽이 한시, 계절의 노래(295) 사물 관찰[觀物] 둘째 [宋] 백옥섬(白玉蟾, 1194~1229) / 김영문 選譯評 새벽 백로 배 불리려개울 지키고 저녁 거미 생계 위해집을 빌리네 구속 없는 아지랑이허공 달리고 가쁜 숨 없이 달팽이는벽 위 밭가네 曉鷺守溪圖口腹, 暮蛛借屋計家生. 不羈野馬空中騁, 無喘蝸牛壁上耕. 시를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선 시인의 생애와 사상 등 작품 외적 요소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시를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흔히 역사적·전통적 접근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작품 밖의 다양한 상식에 치중하다 정작 시 내면의 구조나 풍경을 놓치기 쉽다. 이에 반발하여 구조주의나 신비평에서는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텍스트로서 독립성을 가진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들은 텍스트를 받치는 구조나 시.. 2019. 3. 9. 대낮처럼 밤을 밝힌 등불 한시, 계절의 노래(283) 대보름에 등불을 즐기다[上元玩燈] 첫째 [宋] 백옥섬(白玉蟾, 1194~1229) / 청청재 김영문 選譯評 벽옥이 무르녹아만 리 하늘 이루었고 온 성안 비단 옷들봄 어여쁨 다투네 황혼 뒤 버들 끝엔달님이 걸려 있고 야시장에 펼친 등불대낮처럼 환하네 碧玉融成萬里天, 滿城羅綺競春妍. 柳梢掛月黃昏後, 夜市張燈白晝然. 대보름날 밤의 색채감을 찬란하게 묘사했다. 첫째 구(起句)는 밤하늘 벽옥색이다. 둘째 구(承句)는 온갖 비단 옷의 현란한 색깔이다. 셋째 구(轉句)는 황혼 뒤 버드나무 끝에 떠오른 보름달의 황금색이다. 넷째 구(結句)는 대보름을 즐기기 위해 야시장에 환하게 켜놓은 등불의 붉은색이다. 중국에서는 대보름을 등절(燈節)이라고도 부르므로 이날 밤은 그야말로 채색 페스티벌이다... 2019. 2. 26. 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불태우는 밤추위 한시, 계절의 노래(231) 눈 비친 창(雪窗) [宋] 백옥섬(白玉蟾) / 김영문 選譯評 흰 벽에 푸른 등불가물거리고 붉은 화로 한밤에화기 깊다 눈꽃 피어창 밖 환한데 한 조각 마음추위 견딘다 素壁靑燈暗, 紅爐夜火深. 雪花窗外白, 一片歲寒心. 이런 시를 읽으면 어릴 적 겨울밤이 저절로 떠오른다. 초가삼간 사랑방에 호롱불이 가물 거리고, 방 가운데는 쇠죽 부엌에서 담아온 장작불 화로가 이글이글 탄다. 삭풍이 스쳐가는 창호지 하얀 문가엔 황소바람을 막는 문풍지가 파르르 떤다. 우풍이 심하여 윗목은 무릎이 시릴 정도로 한기가 스미지만 쇠죽 끓인 아랫목은 엉덩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쩔쩔 끓는다. 화로는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이다. 화로를 둘러싸고 온갖 이야기가 오간다. 가족, 친척간 소식과 근황, 가문 선조.. 2019. 1. 1. 나뭇잎 창 때리는 가을밤 산사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215) 호국사에서 가을을 읊다(護國寺秋吟) 여덟째 [宋] 백옥섬(白玉蟾) / 김영문 選譯評 별빛이 천 점반딧불 같고 구름은 한 쌍두루미 같네 외로이 시 읊으며추위에 잠 못드는데 떨어지는 나뭇잎휑한 창을 때리네 星似螢千點, 雲如鶴一雙. 孤吟寒不寐, 落葉打空窗. 절집은 청정하고 고적하다. 스님들은 티끌 세상과 인연을 끊고 불도에 매진한다. 가족, 연인, 친구를 떠나 진리를 탐구한다. 멀고도 깊다. 진실로 텅 비어 있지만 오묘하게 존재한다. 가을 밤 절집 지붕 위로 별이 쏟아진다. 늦여름 풀숲에는 반딧불이 찬란했다. 반딧불이 가득 덮힌 하늘에 하얀 두루미 한 쌍이 날아간다. 아니 흰 구름이다. 분별할 것도 없다. 청정함에는 추위가 묻어있고, 고적함에는 외로움이 배어 있다. 그 추위와 외로.. 2018. 11. 1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