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96)
이른 봄[早春]
[宋] 백옥섬(白玉蟾, 1194~1229) / 김영문 選譯評
남쪽 가지에 비로소
두 세 송이 피었음에
눈속에서 향기 맡으며
분바른 모습 즐기네
담백하게 안개 빛
농도 짙게 달빛 물드니
깊숙하게 물을 덮고
야트막히 백사장 덮네
南枝才放兩三花, 雪裏吟香弄粉些. 淡淡着煙濃着月, 深深籠水淺籠沙.
강원도 일원에 봄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이 밤에 만약 휘영청 달이 밝다면 그야말로 “달빛 희고 눈빛 희고 하늘 땅 모두 흰(月白雪白天地白)” 풍경이 펼쳐지리라.
이른 봄 눈 내린 달밤에 분바른 듯 하얀 꽃을 감상하는 이 시는 묘사가 좀 더 세밀하다. 굳이 패러디하자면 “달빛 희고 눈빛 희고 하늘 땅 모두 흴(月白雪白天地白)” 뿐 아니라 “꽃도 희고 안개도 희고 물과 모래 모두 흰(花白烟白水沙白)” 경지라 할 만하다. 정적 속에 펼쳐진 백색의 향연이다. 무색무취가 아니라 안개빛과 달빛으로 착색한 꽃잎에 은은한 향기까지 감돈다.
무슨 꽃을 묘사했는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지만 눈 밝고, 귀 밝고, 코 밝은 독자들은 벌써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터이다. 제목이 ‘이른 봄[早春]’이니 더 숨기고 감출 것도 없다. 그것은 바로 눈속에 핀 매화 즉 설중매(雪中梅)다.
하얀 매화를 들여다보면 꽃잎 가장자리는 희지만 꽃술이 있는 중앙부는 좀 더 짙은 색임을 알 수 있다. 청매일 경우에는 연초록에 가깝고 백매일 경우에는 분홍색이나 노란색에 가깝다. 그것을 셋째 구에서 안개빛과 달빛이 착색된 것으로 표현했다. 넷째 구는 달빛으로 생겨난 매화 그림자다. 매화 그림자는 성글고 희미하기 때문에 흔히 소영(疏影)이라고 한다. 물가 백사장을 덮은 매화 그림자는 얕고 희미하지만 물속에 비친 그림자는 깊숙하고 짙다.
이번 봄 설중매는 어쩌면 어제 내린 눈 속 풍경이 올해 마지막일 듯하다. 벌써 남녘에는 노란 산수유가 만발했다 하므로 뒤 이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또 연이어 영산홍과 철쭉이 온 산천을 수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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