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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고 다카모리3

[막말인물전-11] 사이고 다카모리를 격파한 성바깥 사무라이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신삼걸의 하나라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는정한론征韓論 파동 와중에 메이지 정부와 결별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반란을 꾀하는데 이때 그를 따라 함꼐 반란으로 들고 일어난 이가  사쓰마번薩摩藩의 옛 사족들, 사쓰마번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들이었다. 앞서 사이고 다카모리 집안이 이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 중 거의 최하층이었음은 이미 말했거니와, 사쓰마번의 "사무라이"에는 이 성밑거리에 모여산 사무라이가 전부가 아니고, 성바깥의 시골 농촌마을에 살던 "향사鄕士"도 상당히 있었다. 이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반란에 합류하지 않고, 메이지 정부군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쓰마 번 "향사"들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규무사와 맞서 싸우는데, 이들의 공격도 사이고의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 한다.. 2024. 7. 22.
[막말인물전-6] 사이고 다카모리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에서 유신 삼걸 하면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다. 이 중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에서 무사도의 상징처럼 떠 받드는 경우를 본다. 인터넷에 보면 사이고 다카모리 집안에 대해 잡다하게 적어놨는데 西郷氏の家格は御小姓与であり、下から2番目の身分である下級藩士であった。라고 하여 사쓰마薩摩藩 번 무사 신분 중 아래에서 두 번째 계급-. 어소성여御小姓与라고 되어 있다.   이 계급이 어떠냐 하면, 薩摩藩の家臣団の家格は正徳元年までに整備され、御一門(4家、私領主)、一所持(21家 私領主)、一所持格(約20家)、寄合、寄合並(寄合、寄合並をあわせ約60家。「三州御治世要覧」ではこの家格を「家老与」と呼んでいる。以上が上士層で家老を出すことができる.. 2024. 7. 21.
[대물大物 이야기] 음낭만 비대한 사이고 다카모리 일본 근대사에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보다 더한 굴곡 많은 삶을 산 사람 있을까? 일본 열도 규슈지방 땅끝마을 사쓰마薩摩 지방 번사藩士, 곧 사무라이 칼잽이인 그는 메이지유신이라 하지만 꿔다논 보릿자루 천황한테 권력을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또 다른 막부 군사 쿠데타로 에도 막부 정권을 타도한 주역이었지만, 신정부에서 노선 갈등으로 권력투쟁에 패해 고향 가고시마鹿児島로 낙향한다. 그가 걸은 길을 보면 앞선 대물 열전 또 다른 주인공 여불위의 그것과 흡사한데, 낙향하고 난 다음 행보 역시 딱 여불위 그것이다. 전반으로 보아 사이고는 책략가라기보다는 우직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나는 짙게 받는다. 그는 나라를 경영할 만한 인재는 아니었던 듯하고 돌격앞으로 딱 이에 어울리는 사람 ..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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