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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3

성균관대박물관이 풀어헤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근묵槿墨 위창 오세창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말년 제자이기도 한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다. 본관은 해주로, 5대에 걸쳐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특성상 서울 중부 시동時洞(지금의 청계천 2가) 집에는 당대 명성이 있던 학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오세창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가학을 전수받고, 최고의 인사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7세가 되던 1880년, 사역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를 이어 역관이 되었고, 이후 188년 박문국 주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정3품에 올라 우정국 통신국장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8년(35세) 개화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6년(43세) 손병희 등과 귀국하여 만세보.. 2023. 5. 30.
"추사체는 구제불능" 오경석이 평한 추사 글씨 우리나라의 글씨는 옛날에는 진晉나라 사람 글씨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순전히 팔을 써서 그저 모양만 추구하였고, 예로부터 서학書學에 대해 강론한 적이 없었으므로 이따금 글씨에 능한 명필이 배출되었더라도 일종의 거칠고 속된 기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근일에 김 추사秋史 글씨가 성행하는데, 경솔한 데다 더욱 구속됨이 없어 드디어 마계魔界로 들어가 약으로도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일재日齋의 글씨는 결구가 원만하고 정돈되었으며 풍채가 유창하고 아름다워 비록 골력이 약간 허약하지만 고상한 운치가 넉넉하다 하겠습니다. 재주와 식견이 빼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누적된 악습에서 물결을 되돌려 홀로 깃발 하나를 세우고서 옛사람과 겨룰 수 있었겠습니까? 완상하면서 손에서 차마 놓지 못하여 이에 몇 마디를 덧붙여 공경하는 뜻을 .. 2023. 5. 22.
Non-교수 대학박물관장 탄생에 부친다 성균관대박물관장에 김대식 씨…학예직 출신 첫 대학박물관장 김예나 / 2023-01-15 07:33:00 약 25년간 일한 박물관 베테랑…박물관장-교수 겸직 현실 속 변화 주목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34318270026 김대식은 천상 박물관에 미친 사람이다. 모교 사학과 출신으로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고는 1998년 또 같은 대학 부설 박물관에 임용되어 죽 일했으니, 이런 그라고 왜 교수 욕심이 없었겠는가만은, 또, 그 과정에서 왜 환멸이 없었겠느냐만, 오척단신 이 사람이 단 한 번도 박물관 업무를 단념 푸념하거나 주어진 일자리로 만족하는 일을 나는 본 적 없다. 그는 귀잖을 정도로 집요하고 열성이었으니, 내가 저 ..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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