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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8

단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민족주의를 오늘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단재 신채호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독립운동가로서 단재의 역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역사가로서 신채호라면?   *** editor's note *** 필자 말마따나 단재는 문제적 인물이다. 저를 어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결국 한국 내셔널리즘을 어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하니 그 일단의 고민들을 아래들로써 나 또한 생각해 보고자 했다.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린 김춘추 객관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라는 어용御用 단재가 오도한 역사, 사대주의자 김춘추 2024. 11. 3.
단재와 다카하시 토루, 정선태와 박노자, 그리고 브루스 커밍스 흔히들 식민사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건으로 반도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을 들거니와 그 점에서 이에 가장 충실한 인텔리겐차는 실은 단재 신채호(1880~1936)다. 그의 이와 같은 조선인성론에 대한 비판은 참말로 혹독하다. 우리가 말하는 식민사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는 실은 다카하시 토루(현행 외래어 표기법상은 다카하시 도루) 고교형高橋亨(1878~1967)이다. 경성제국대학에서 한국철학을 가르쳤다는 그 다카하시다. 함에도 똑같은 논조의 글인데 단재를 읽으면 탱천하고, 다카하시 글을 읽으면 구토가 난다. 요즘 한창 활동하는 한국근대사가로 가장 주목할 만한 이가 정선태 국민대 교수와 박노자다. 정 교수는 국문학이 전공이지만 나는 이만한 역사학자 본 적이 거의 없는 독보 그 자체다. 박노자 또한 그에 버금갈 .. 2023. 7. 1.
김유신,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者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戰場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者" 신채호가 김유신을 난도질하면서 한 말이다. 이런 단재를 내가 떨쳐버리는 데 실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친 단재를 다시 불러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2014. 1. 10) *** 신채호가 바라보는 김유신 관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도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초창기 황성신문 같은 데서 활약할 적에는 전통시대 역사관 그대로 멸사봉공하는 이상형이었다. 그러다가 내셔널리즘 세례를 듬뿍 받으면서 저에다가도 내셔널리즘을 투영해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nation으로 혼동하면서, 그런 신라가 이민족인 당을 끌어들여 동족同族인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한 사실을 멸시 증오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단재의 시대착오였다. .. 2021. 1. 10.
국민의 이상형 '화랑' 2000년대 접어들어 신라 화랑을 국민만들기 nation building 라는 시각에서 접근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전에도 이런 시각의 글이 있었는지 자신은 없으나 거의 없었다고 기억한다. 《화랑세기》, 이를 두고 참 말이 많다. 진짜니 가짜니 해서 쟁투를 벌인다. 나는 진짜라는 쪽에 서서 맹렬히 싸웠다. 한데 실로 묘하게도 이 가짜라는 《화랑세기》가 역설적으로 순국무사 화랑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국민의 이상형으로 근대 국민국가 한국이 화랑을 발견했다는 총구는 외람스럽지만 내가 당겼다고 본다.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이 졸저가 나옴으로써 화랑은 비로소 국민의 실체로 발가벗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내며 그 프롤로그로 '순국무사 화랑을 해체하며'라는 장중한 역사 에세이.. 2020. 8. 20.
단재와 순국무사, 김유신을 일그러뜨린 악의 축 내가 life work 중 하나로 삼는 주제가 김유신이다. 김유신은 나 말고 제대로 증언할 사람이 없다는 믿음이 있다 이를 위해 단재를 넘어야 한다. 단재가 민족의 성전에 불태워버린 김유신을 복권해야 한다. 이는 첫발이요 넘어선 단재의 자리에 무수한 김유신을 안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화랑이 순국무사의 청소년 집단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신화를 나는 우선 붕파해야 했다. 단재와 순국무사, 이 두 가지가 김유신을 일그러뜨린 양대 축이다. 진천 길상사에서.... 3년전 오늘 나는 김유신 태생지에 자리한 그의 사당에서 이리 적었다. 2019. 4. 26.
단재가 오도한 역사, 사대주의자 김춘추 구한말 애국주의적 언론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 한 대목에서 이리 썼다. 그러나 "신라가 國小民弱(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을 갚으랴. 오직 外援(외원)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중략)…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데까지 限하여 모든 卑辭厚禮(비사후례)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子 법민·인문 등을 당에 留質(류질)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자기)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 2019.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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