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안태6 고려 이전 태실은 왜 개무시되었는가? 첫째 사례 빈곤이라 신라 이전 태실은 오직 김유신 사례 하나만 보고됐을 뿐이니 이 김유신 태실만 해도 삼국사기 그의 열전에 저록되기는 했지만 워낙 평지돌출인 까닭에 그 존재 자체 실존 자체까지 내심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기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서 이것이 태실이라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태실은 더욱더 그 중대성에 견주어 그런 실물자료가 많이 남은 조선시대 위주로 논의가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마왕퇴 백서에 대한 개무시도 저와 같은 경향에 기름을 부었으니 나는 이 태실 전통이 중국대륙 남쪽 장강 문화권에서 비롯하고 그것을 중심 혹은 일부 지역으로 포함하는 기원전후 무렵 동아시아 문화권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함을 틈나는대로 역설하거니와 이 문화권은 중국 남부와 한반도 남부 그리고 일본열도 중남부를 .. 2024. 4. 1. 태항아리가 진단구라는 장난, 이제는 사라졌으면 싶다 (고대 일본 의학 류서類書 단파강뢰 편집 의심방에는) 동진~수당 사이에 나온 을 인용하여 장태藏胎 방법을 적고있다. 이 의심방의 에서 장태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기를 "태를 깨끗이 씻고 새 질항아리를 준비하고 밑에 5개의 동전을 놓는다. 빨간색 견직물로 태를 싸서 항아리 속으로 놓고 동전을 덮는다. 진흙으로 항아리를 밀봉해서 동물이나 벌레들이 태를 먹는 것을 방지한다. 땅을 3척 2촌 정도 파서 항아리를 깊이 묻는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은 건강하고 장수하여 피부도 깨끗하다. 또한 다른 장태법도 있다. . .동전 3개를 새항아리 속 밑으로 놓는다. 동전 하나는 땅을 사주고 하나는 수명을 사주고 하나는 양식을 사준다 는 뜻이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번에 출토된 토기는 이 기록, 즉 중국 수당의 장태방법.. 2023. 10. 25. 안태安胎문화, 그 그랜드디자인은 어찌 짤 것인가? 안태安胎는 장태藏胎라고도 하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봉안하는 방식 일체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관습, 관념 일체를 일컬어 안태문화 혹은 장태문화로 카테고리라이제이션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안태문화는 그것을 땅에다가 매장한다는 점에서 실상은 동시대 시체 매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 까닭에 이 안태문화가 전개하는 양상을 보면 동시대 시체매장문화재 패턴과 다른 바 없다. 이 공통하는 분모를 그랜드디자인이라 할 수 있거니와 다만 안태가 시체 매장과 다른 점은 전자가 갓 태어난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런 삶을 다하고 티끌로 돌아가는 과정에의 시작인 시체 매장과는 갈 길이 다르다. 다만, 그럼에도 그것이 매장이라는 점에서 하등 다를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태는 시종일관해서 동시.. 2023. 10. 11.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전송한 안태사安胎使 이명한李明漢 장유張維(1588∼1638)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제31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2백 33수首 안태사로 떠나는 이 시랑 천장을 전송하며[送安胎使李侍郞天章] 제비 나는 봄날 벌써 왕자 얻은 상서라 기쁜 기운 미앙궁 총총히 감싸도네 두건 말아올린 준수한 장발 다퉈 보겠다고 옥함에다 성스런 탯줄 깊이 넣었네 솜 오이마냥 본손지손 백세에 번창하고 종묘사직 온갖 신령 대대로 창성하리 우리 시랑 다시 사신 뽑혀 이 봄날 강호 풍경 두루 만끽하겠구려 燕禖弓韣早呈祥。喜氣蔥蔥繞未央。珠褓爭看壯髮秀。玉函深護聖胎藏。本支百世綿瓜盛。宗社三靈奕葉昌。華省侍郞還擁傳。靑春湖海閱風光。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주-D001] 안태사安胎使 : 왕자가 탄생하였을 때 그 태반胎盤을 태봉胎峯에 묻기 위해 출장하는 특사.. 2023. 5. 17. 먼데는 싫다, 가까운 곳으로 하라! 경기를 본인 태실로 점지한 조선 성종 창경궁 성종태실 및 태실비 창경궁 성종태실 및 태실비성종태실 및 태실비 King Seongiong's taesil (Placenta Chamber) and taesilbi (Placenta Burial Marker) 成宗胎室輿胎室碑 태실은 왕실 자손의 태를 문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 historylibrary.net 앞서 창경궁으로 옮긴 성종대왕태실成宗大王胎室을 간략히 사진 중심으로 소개했거니와, 이 자리에서는 이 문제를 들여다 봐야겠기에 별도 코너 하나로 독립한다. 태실은 실상 동시대 무덤을 조성하는 방법과 근간이 같아서 나를 이런 같은 근간을 매양 그랜드디자인 grand design이라 부르거니와, 무덤 뿐이겠는가? 사리장엄 안치하는 방식도 이와 똑같다. 태실은 글.. 2023. 4. 25. 마왕퇴馬王堆 태산서胎產書 충북 진천엔 김유신 태실이 있다. 그는 진천 태생이고 더구나 삼국사기에 그의 태실이라 했으므로 이곳이 진짜 그의 태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데 관건은 이를 제외한 태실 조성 관련 기록이 조선시대 이전엔 전연 안보인다는 사실이다. 중국 기록을 봐도 당대 이전 문헌에서 태실 관련 기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김유신 태실은 평지돌출이다. 한데 내가 십수년전에 검토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塞 출토 백서錦書 중 태산서胎產書를 보니, 그에 태를 안치하는 방법을 기록한 대목이 있고, 더구나 그 대목에 붉은 펜으로 내가 차기劄記하기를, '김유신 태실'이라 한 메모가 있는 옛날 책을 발견했다. 이런 등신 멍충이 바까야로 (2017. 4. 21) *** 마왕퇴 백서白書 중 하나로 본래 이런 이름이 아니라, 나중에 이를.. 2021. 4. 2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