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방자3 가혜 이방자의 글씨 가혜 이방자(1901-1989)의 생애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여기서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필자가 아는 것이 부족하다. 굳이 말하자면, 요즘 표현으로 '경계인'이랄까(하기야 근대를 살았던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는가마는). 60년대 영친왕과 함께 한국에 온 뒤 그-이방자 여사는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에 힘썼다. 당연히 여기엔 많은 돈이 들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그는 칠보공예, 도자기, 서화에 손을 대 전시나 자선바자회를 통해서 팔았다. 그래서 이방자의 서화 작품은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림은 주로 화조를 그렸는데 구룡산인 김용진(1878~1968)이나 월전 장우성(1912~2001) 화풍이 엿보인다. 깔끔하고 단아하며 격도 충분히 갖추었다. 작품을 많이 그린 것에 비하면 허투루 그린.. 2024. 5. 4. <조선왕실의 마지막> (4) 일본 국적이 강제로 박탈된 이구 김태식[문화부] 2005.07.22 15:35:08 (끝) 그렇다면 최근 타계한 영친왕의 외아들 이구(李玖) 씨는 어떠한 삶의 궤적을 남겼을까? 1931년 12월 29일, 영친왕과 이방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출생과 동시에 왕세자(王世子)로 '자동' 책봉됐다. 형이 있기는 했으나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죽고 없었으므로 그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사내임이 확인되는 그 순간에 바로 이왕(李王)의 후계자인 왕세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법적 근거는 앞에서 누차 거론한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이라는 법령 때문이었다. 이 전범 제40조는 왕공족(王公族)을 여러 단계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것을 순서대로 보면 ▲ 왕 ▲ 왕비 ▲ 태왕(太王. 은퇴한 왕의 아버지) ▲ 태왕비(太王妃).. 2021. 2. 9. <조선왕실의 마지막> (2) 황족령皇族令에 따른 각종 특혜를 받은 이왕가 2005.07.22 15:33:52 (2) 구체적으로 보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1910년 8월 29일 이후 1926년 4월 25일에 사망할 때까지 '이왕'(李王) 신분으로 있었다. 허울뿐이긴 했으나, 그는 여전히 명목상 조선의 왕이었다. 그는 주로 창덕궁에 거주했기 때문에 '창덕궁 이왕 척'(昌德宮李王拓)이라 일컬어졌다. 반면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된 그의 아버지(고종)는 왕의 아버지라고 해서 태왕(太王)이라 했으며, 주로 덕수궁에 거주했으므로 '덕수궁 이태왕희'(德壽宮 李太王熙)라고 했다. 순종 사망 뒤 이왕(李王)이라는 칭호는 그 계승자에게 세습되었다. 그가 바로 순종의 이복동생이며 고종의 아들인 이은(李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각인된 고종의 아들이요, 순종의 계승자.. 2021. 2. 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