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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10

북한이 왜 석왕사를 복원했을까? 태조 이성계가 왕좌 꿈꾸던 北 사찰 복원됐다2019/12/14 08:00北, 석왕사 복원 준공식…"민족의 자랑스런 전통 이어나가야" 확실히 북한이 문화재정책이 변모한 듯한 모습을 여러 군데서 보여준다. 요즘 들어 부쩍 고고학 발굴조사가 늘어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 석왕사釋王寺 복원 사업까지 마무리했다니 말이다. 복원하면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불교진흥을 위해 했을 리는 만무할 테고, 요리조리 뜯어봐도 결국은 관광일 텐데, 석왕사 복원 사업 자체가 김정은이 근자 금강산을 찾아 뱉었다는 그 말과는 직접 연동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아니하는 측면이 있지만, 아무튼 뭐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석왕사 실체를 확인하고자 구글 지도를 때려봤더니 저기다. 난 금강산에서 가깝지 아니할까 .. 2019. 12. 14.
"네 놈 중국어가 나하추 중국어 같구나" 목은 이색은 외국어 습득 능력이 꽝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 이곡이 벼슬살이를 하는 연경燕京으로 유학가서 그쪽에서 삼년 정도 생활을 하고는 외국인 특별전형에도 합격했지만 말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은 좀 되고 외국생활이란 프리미엄이 붙으니 귀국 뒤에는 외교분야에서 맹활약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출세 수단이 된다. 원이 회복 불능으로 쇠미하고 남경에 기반을 둔 명 왕조가 개창하자 외교사절로 목은이 남경에 간다. 그를 면담한 무뢰배 출신 황제 주원장은 양다리 걸치기 하는 고려에 야마가 한껏 돌았다. 대뜸 욕찌꺼리 퍼붓고는 "네놈이 중국 유학을 했다니 중국말로 대답해 보라"니 목은이 몇 마디 떠듬거린 모양이다. 그걸 듣던 깡패 원장이가 목은을 다시 경멸한다. "네 놈 중국어는 나하추納哈出의 중국.. 2018. 2. 13.
이성계의 이색李穡 정치학 고려말 지성계 주류로 침투한 주자성리학은 그 태생이 반불교다. 실제 주자의 각종 어록엔 요즘 이단에 대한 극언을 서슴지 않는 한국사회의 개독 윤리와도 흡사하다. 하지만 이들이 옹립한 성계 이씨는 성리학과는 거리가 전연 멀었으니 첫째 공부를 안했으며 둘째 생평을 전장에서 말 위에서 보냈다. 더구나 그는 철두철미 고려인이다. 이건 여진족 계통이냐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에는 불교에 대한 증오가 거의 없다. 이들에겐 공자와 석가가 한몸이다. 부식 김씨가 그랬고 제현 이씨가 그러했으며 더구나 고려말 유학의 종장이라는 목은 역시 철두철미 석가의 재가 신도였다. 이는 석가를 증오한 소위 신지식인들에게 포박된 성계도 마찬가지라 망나니 아들 방원이한테 쫓겨난 뒤엔 회암사로 들어가 아주 중이 된 성계 역시.. 2018. 2. 13.
이성계의 장송의례와 수릉壽陵 태조실록 권제7, 태조 4년(1395) 3월 4일 정유 첫 번째 기사로 이성계가 자기가 묻힐 묏자리를 둘러본 일이 다음과 같이 실렸다. 상께서 과주(果州)로 거둥하여 수릉(壽陵) 자리를 살폈다. 돌아올 때 도평의사사 주최로 두모포(豆毛浦) 선상(船上)에서 술상을 차리고 여러 신하가 차례로 술잔을 올렸다. 정도전이 나와서 말하기를 “하늘이 성덕(聖德)을 도와 나라를 세웠으매, 신들이 후한 은총을 입고 항상 천만세 향수(享壽)하시기를 바라고 있사온데, 오늘날 능 자리를 물색하오니, 신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하고 흐느껴 눈물 흘리니, 임금이 말했다. “편안한 날에 미리 정하려고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우는가?” 왕심촌(往尋村) 노상(路上)에 이르러 임금이 말을 달려 노루를 쏘려 했지만, 마부 박부금(朴夫.. 201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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