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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Serve your parents to the utmost while they are alive Serve your parents to the utmost while they are alive After the are gone, your heart will be broken. What can you do? For this there is no redness. 어버이 사라진 제 셤길일란 다하여라디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평생에 고쳐 못 곳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송강松江 정철鄭澈 ( 1536 ~ 1593 ) 영어번역은 국립한글박물관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유산》 전시도록(2019)에 의거한다.
정호(鄭澔, 1648~1736) 〈식영정 중수기(息影亭重修記)〉 장성 獨居翁 기호철이 교열하고, 해제하며 옮기다. 지금은 전남 담양군 광주호 변 경승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한 누정樓亭인 식영정은 앞선 자료들을 봤듯이 임진왜란 발발 이전인 1560년 무렵에 지었다가 이후 언제인지 폐허가 된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공업자이면서 땅 주인인 김성원(金成遠, 1525~1597)과 그가 이를 지어 짜웅한 그의 장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죽으면서 이내 폐허 상태로 방치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어느 시점이 되겠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그렇게 폐허가 된 그 터에다가 송강 정철 후손인 정민하(鄭敏河)가 그 땅을 사들이고는 경종 3년(1723) 무렵, 식영정을 재건한 사정을 정리한다. 중건기를 쓴 사람은 같은 정..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다. 임억령 시대 식영정은 이후 언제인지 사라지고 200년 가까이 그곳은 빈터로 남았다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후손들이 식영정 터를 매입해 정자를 새로이 짓고 중건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 직접 연결된다. 식영정 중건기를 송강..
온몸으로 막아서는 백발 가을날 넋두리[秋日作] [朝鮮] 정철(鄭徹, 1536~1593) 산비에 밤새 대숲이 울고 가을벌레 침상에 오르네 흐르는 세월 어찌 하리오 자라는 백발 막지 못하네 山雨夜鳴竹, 草蟲秋近床. 流年那可駐, 白髮不禁長. 1, 2행 “산비 밤에 들자 댓잎을 울리고, 풀벌레 가을 되자 침상에 오른다.[山雨夜鳴竹 草虫秋近床]”는 구절은 이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백련초해(百聯抄解)》와 작자 미상의 《추구(推句)》에도 수록되어 애송되는 것인데, ‘草虫秋近床’이 ‘草虫秋入床’으로 되어 있다. (이 해설은 기호철 선생에 의한다.)
물 맑으니 난 갓끈이나 씻으련다 도문 스님에게 주다〔贈道文師〕 정철(鄭澈, 1536~1593) / 기호철 譯評 작고 아담히 새로 지은 죽록정은 小築新營竹綠亭송강 물 맑으니 내 갓끈 씻으리라 松江水潔濯吾纓세상 찾는 발길 모두 뿌리치고는 世間車馬都揮絶 강산 청풍명월 그대와 품평하리 山月江風與爾評 제목 ‘도문사(道文師)’는 스님인 도문(道文)이란 뜻이다. 동시대에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이 쓴 〈도문 상인을 전송하다[送道文上人]〉는 시가 《옥봉집(玉峯集)》 상(上)에 실려 있는데, 같은 사람인 듯하다. 다만, 도문에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죽록정은 송강정 원래 이름으로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훗날 후손들이 중건하면서 송강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둘째 행 ‘송강 물 맑으니 내 갓끈 씻으리라’란 말..
만리밖 아스라히 평호 비추는 조각달 정철(鄭澈, 1536~1593), 〈평호당(平湖堂)〉 기호철 譯 〈평호당(平湖堂)〉 2수 우주간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宇宙殘生在 강호속에 흰머리만 늘어가네 江湖白髮多청명시대 통곡일랑 그만두고 明時休痛哭거나해져 소리높여 노래하리 醉後一長歌 먼 봉우리 자꾸 개었다흐렸다 遠岫頻晴雨어촌은 돌연 보였다 사라지네 漁村乍有無작은배 한 척에 조각달 하나만 孤舟一片月만리밖 아스라히 평호 비추네 萬里照平湖
자라나는 흰머리 무슨 수로 막겠는가? 〈가을날 짓다[秋日作]〉 [조선) 정철(鄭澈, 1536~1593) / 기호철 譯解 산비는 밤에 들자 댓잎을 울리고풀벌레 가을 되자 침상에 오르네흐르는 세월 어찌 머물게 하리오자라는 흰머리 막지도 못하거늘 山雨夜鳴竹, 草虫秋近床。流年那可駐? 白髮不禁長。 1, 2행 “산비는 밤에 들자 댓잎을 울리고, 풀벌레 가을 되자 침상에 오른다.[山雨夜鳴竹 草虫秋近床]”는 구절은 이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백련초해(百聯抄解)》와 작자 미상의 《추구(推句)》에도 수록되어 애송되는 것인데, ‘草虫秋近床’이 ‘草虫秋入床’으로 되어 있다.
중이 날짜는 알아 뭣에 쓰건디? 산승의 시축에 쓰다[題山僧軸] [조선] 정철(鄭澈, 1536~1593) / 기호철 譯評 무슨 날인지 중이 알아 무엇하리 산에 핀 꽃이 사계절 기억하거늘 때론 푸른 하늘구름 속에서 오동잎 보며 앉아 시나 쓰소 曆日僧何識? 山花記四時。時於碧雲裏, 桐葉坐題詩。 오동잎 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북위(北魏) 고조(高祖)가 원림에서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오동나무 잎이 무성하자 신하들의 훌륭한 덕과 모습을 찬미한 시를 지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魏書 卷21下 彭城王傳》) 이에서 유래해 후대에는 모춘(暮春)에 신하들이 모여 연회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당(唐)나라 두목(杜牧)의 〈제동엽시(題桐葉詩)〉에 “강가 누각에서 오늘 돌아가는 제비를 보내노니, 바로 작년에 나뭇잎 보며 시를 쓰던 때로다.〔江樓今日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