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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노후의 역작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의학이나 자연과학자는 평생의 업적이 거의 젊은 시절 결판난다. 빠르면 30대, 늦어도 50대면 결판나고 50대 후반에 들어가면 연구비 더 줘 봐야 나올 것 없다. 경험이 어쩌고 경륜이 어쩌고 이야기 하지만 다 헛소리고 50대 후반이면 이미 의학자이건 자연과학자이건 창의성 있는 뭔가가 나올 시기는 지났다고 봐야 옳다. 필자도 나름 30-50대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50대 후반 넘어 60이 목전에 오니 체력도 체력인데 호기심과 창의력이 많이 감퇴한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필자가 절필하는 시기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고 들여다 봐야 새로운 것도 못 만들어내는 시기가 될 것 같다. 각설하고-. 요즘 가끔 시간이 나면 소위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자연과학, 의학, .. 2024. 3. 14.
함안고등학교 부지서 아라가야 시대 소 모양 뿔잔 출토 말이산고분군과 함안고등학교 위치 상관관계는 이렇다. 이 고분 북쪽 지금의 함안 읍내에 함안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가 개축공사를 예정하고서는 문화재가 지하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해서 함안군이 사전에 (재)바른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에다가 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성격히 확실히 드러나지는 아니하는 삼국시대 구덩이 13곳과 도랑 흔적 3곳, 그리고 기둥구멍 흔적들을 확인하는 한편 고배高杯, 호壺, 소옹小瓮, 개蓋, 상형토기와 같은 유물을 적지 않게 수습했다. 이 중에서도 길이 820㎝, 폭 440㎝, 깊이 30㎝ 구덩이에서 찾은 상형토기는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소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끈다. 소를 본딴 등 부분에는 뿔잔을 붙여놨다. 조사단은 머리 .. 2024. 3. 13.
제때 죽어줘야 하는 아버지 고구려 장수왕은 이름대로 백수를 했다. 그의 아들로 세자는 조다助多. 아버지가 무려 왕위에만 79년간 있다 죽었을 때 조다는 그 이전에 죽고 없었다. 조다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문자명왕이다. 조선 세종. 왕위에 물경 32년이나 있었다. 문종. 세종의 장자로 아버지가 재위 3년째인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세종은 모든 실권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있었다. 그러니 세종이 왕위에 재위한 기간이나 문종이 세자로 있는 기간은 같다. 세자 생활은 왕보다 더 힘들다. 언제건 틈만 나면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일어나기에 어정쩡한 넘버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너무 똑똑하면 똑똑하다 해서 견제 받아 아비를 잡아 먹을 놈이라 해서 쫓겨나고, 등신 같으면 등신같다 해서 쫓겨나고, 방탕하면 방탕.. 2024. 3. 13.
J. R. R. 톨킨과 "반지의 제왕" J. R. R. 톨킨은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정통문학과 판타지문학의 다리역할은 물론 사실상 후자의 개창자 역할을 하여 지금도 모든 판타지 문학은 그의 영향권 하에 있다. J.R.R. 톨킨의 판타지물은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긴 한데, 정작 그의 3부작은 출판 시기가 상당히 늦다. 29 July 1954 (The Fellowship of the Ring) 11 November 1954 (The Two Towers) 20 October 1955 (The Return of the King) 이렇게 1954-1955년 연간에 3부작이 모두 나왔으며 그의 나이 62-63세 때이다. 그는 원래 판타지 소설가가 아니라 언어학자이다. 옥스포드대의 영문학과 교수이며 저 유명한 옥스포드영어사전의 편집자 중 하나였다... 2024. 3. 13.
잃은 것은 글쓰기요 얻은 것은 각주다 내가 요새 틈나는 대로 노산 이은상을 읽는 중이다. 1903년생인가일 것이다. 노산은 직업적 학문종사자와 문필가 중간에 걸치는 사람이다. 이 세대 글쟁이가 거의 그렇다. 양주동이며 리선근이며 하는 인물들이 다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그런 까닭에 논문도 적지 않게 썼다. 한데 이들의 논문은 그 자체가 문학작품이라는 느낌을 다분히 받을 정도로 그 문체가 맛깔나고 유려하다. 혹 강건체 만연체가 많음에도 그 흐름이 방향을 받지 않고 무슨 물결과 바람에 의지에 배를 타는 기분이다. 이기백은 1924년생으로 안다. 벽사 이우성은 한살 적을 것이요 고병익은 1923년생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직업적 학문 시대를 본격으로 연 사람들이라 소위 잡문도 무슨 딱딱한 논문투를 벗어나지 못해 현미밥을 씹는 기분이다. 독특한 인물.. 2024. 3. 13.
화랑세기花郎世記의 세기世記 기紀는 근간이 記와 발음, 뜻이 같다. 그래서 세기世紀는 世記라고도 한다. 世紀 혹은 世記는 무슨 뜻인가? 순차별 전기라는 뜻이다. 순차는 무엇인가? 먼저와 나중을 구별하되, 먼저 무슨 직책에 있었던 사람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사람은 나중에 쓴다. 세가世家라는 말이 있다. 기전체 역사에서 이는 왕대별 주요 사건 일지다. 고려세가라 하면 반드시 그 순서는 초대 태조 왕건에서 시작해 순서를 밟아 마지막 공양왕까지를 기록한다. 세기가 무엇인지 이 세가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화랑세기花郎世記가 있다. 삼국사기 김대문 열전에 그가 지은 책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한데 그것을 베꼈다고 간주되는 남당 박창화 필사본에는 그 제목이 花郎世紀다. 둘 사이 미묘한 표기차이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나 같은 말이다. 이 화랑세.. 2024. 3. 13.
향토鄕土 vs. 지역地域, 어느 쪽이 식민잔재인가? 5월에 시행을 앞둔 국가유산기본법 발동과 관련해 향토유산 혹은 지역유산 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하거니와, 실상 향토유산은 이미 통용하는 용어이며, 지역유산 또한 특정한 지역의 유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생경한 용어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국가유산이라는 요망한 말로써 기존에 쓰던 문화재를 대체하는 통에 그것이 주는 강압적 국가적 군국주의 색채에 상응하여 국가에 대비하는 특정한 지역을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유산은 어찌되는가 하는 고민에서 저 개념이 법제화를 하려고 한다. 한데 문화재청에서는 향토鄕土 라는 말이 일제 잔재라 해서 지역地域이라는 말을 강제하고자 한다 하거니와, 그것이 천부당만부당한 개소리임은 이미 앞서 두 차례 사례 검출을 통해 증명했거니와 이참에 저 두 말을 좀 더 처절히 분석하고자 한다.. 2024. 3. 13.
금추錦秋 이남호李南浩(1908~2001)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 시인의 창가에 맑게 공양하나이다[詩窓淸供] 금추錦秋 이남호李南浩(1908~2001)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다. 그릇과 책, 청동거울, 괴석, 호리병 따위 옛 기물을 화면에 놓았는데, 되는 대로 던져둔 것 같으면서도 구도가 안정적이고 특히 청동거울의 무늬와 질감 묘사가 돋보인다. 한 번에 그은 획이 거의 없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못 호방함도 갖추었다. 금추는 국사 교과서에도 실리곤 했던 를 그린 작가다. 이당 김은호(1892~1979)에게 사사받았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필치를 구사했다. 중국 베이징대 중국화과를 졸업해서인지 거친 맛(소위 대륙적?)이 유달리 두드러지면서도 묘사력이 뛰어나다. 특히 '죽음헌주인竹音軒主人'으로 당호를 쓴 중년 작품이 좋다. 다양한 화목에 능했고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 2024. 3. 13.
내가 좋은 전시는 필패한다. 그렇다면 어떤 전시가 성공하는가? 내가 차리고도 내가 쪽팔리는 전시 내가 차리고도 내가 부끄러운 전시 내가 차리고도 내가 이 정도로 망가져야 하는가 하는 전시 이 전시가 대체로 성공한다. 반면, 내가 봐서 내가 흐뭇한 전시 내가 봐서 내가 위대한 전시 내가 봐서 내가 우쭐한 전시 이 전시는 필패한다. 그런 까닭에 고고학 전시는 고고학도가 해서는 안 된다. 미술 전시는 미술가가 전시해서는 안 된다. 전시와 내 전공은 다르다. 얼마나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늘 말하는 고고학 박물관이 성공하기 위한 제1 조건은 진열장에서 토기를 없애야 한다는 말 이 말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천만에 고고학박물관으로서 토기 치운 전시가 성공하지 않은 적 없다. 고고학박물관으로서 토기 채운 전시 치고 성공한 전시 없다. 박물관은 고고학도가 꾸미는 것.. 2024. 3. 12.
고려사랑 조선실록이 남긴 鄕土의 흔적들 향토鄕土라는 말이 일제 잔재이므로, 그것을 지역이라는 말로 교체하라는 문화재청 교시가 오늘 나를 격발케 했거니와, 그것을 부정하는 근거로 나는 이미 전국시대 혹은 늦잡아도 진한시대에는 저 말이 벌써 우리가 생각하는 그 뜻, 곧 말 그대로 고향의 땅, 곧 고향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증거로써 열자列子를 들이밀었거니와 그것을 확대하여 그래도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할까 저어하여 이번에는 고려사랑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향토라는 말을 근거로 더욱 보강하고자 한다. 먼저 고려사에서는 저 말이 두 군데 보이거니와 세가世家 권 제44 공민왕恭愍王 22년 7월 정몽주가 풍랑으로 잃어버린 공문을 새로 베껴서 가지고 오다 기사에서 이르기를 고향[鄕土]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부모가 반드시 아들 생각에 잠길 것이고, 아들은 .. 2024. 3. 12.
고려사 입문서는 고려사절요와 동국통감 흔히 고려사를 떠올리겠지만 이는 기전체紀傳體라 해서, 각종 잡다한 것들을 어지럽게 섞어놓아서 고려사 대강을 접하려는 사람들을 질려 버리게 만든다. 분량 또한 너무 방대하고 이거 먼저 접하다가는 다시는 고려사는 안쳐다 본다. 고려사를 입문하는 넘버원 기본 교재는 말할 것도 없이 고려사절요 혹은 동국통감이다. 고려사절요는 편년체라, 건국에서부터 멸망까지 주요한 사건 흐름을 시간 순서로 따라 정리했다. 고려사와 더불어 거의 동시기에 왜 고려사절요가 나왔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저들도 고려사는 질려버리는 까닭에 그 압축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말 그대로 요점만 절록했다 해서 절요節要라 한다. 이런 편년체 고려사 통사로는 절요 외에도 동국통감이 있다. 이 동국통감도 매우 긴요하고 편한데, 전반부는 삼국시.. 2024. 3. 12.
[박물관 현황과 연혁] 대한민국 1호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기초자료가 2016년 개관 70주년 기념해 이 박물관에 펴낸 책자들이기에 이후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이는 추후 보강키로 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박물관 건립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28세의 젊은 미술학도였던 이경성은 일제에 의해 흩어져 있던 여러 자료들을 동분서주하며 수습하였다. 미군정과 협의를 통해 부평 조병창에 버려져 있던 중국 철제 유물을 미군 트럭에 실어오기도 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족박물관에서도 유물을 빌려와 박물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박물관 건물은 인천 중구 송학동(현재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자리)에 있던 옛 독일계 무역상사인 세창양행의 사택으로 결정되었다. 이경성은 인천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건축 자재를 .. 2024. 3. 12.
[自述] 돈 끌어와 개최한 고구려 고분벽화 학술대회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따로 놀기 마련이라, 좋은 의미에서 시작한 일이 꼬이는 때가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회 개최와 관련해 주최한 학술대회가 그러했으니, 이야기인즉슨 이랬다. 연합뉴스가 일본 교도통신, 한국의 서울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인류의 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2006. 9. 2∼10. 22)을 개최했거니와, 이 전시회는 현재까지 나로서는 내가 직접 간여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였으니, 이후에도 간접으로 회사 주최 전시회에는 이런저런 식으로 손을 대기는 했지만 다 간접이었으나, 이 전시만큼은 내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이 전시회 관련 논급은 여러 군데 했으니, 중복을 피하기로 하고 이 전시회를 막상 개막하고 나니 뭔가 하나 허전한 게 있었으니, 관련.. 2024. 3. 12.
용어와 개념과 분류는 행정의 알파요 오메가다 물론 이걸 추진하는 쪽에서는 다른 이유를 댈지 모르지만 문화재보호법 근간을 뜯어고치게 된 출발은 그 첫째도 둘째도 명실名實의 불일치였다. 첫째 문화재라 했지만 이 문화재는 자연유산을 포함하지 못한다. 그래서 특히 자연유산을 하는 쪽에서 불만이 팽배했고 이럴 것 같으면 우리는 환경부로 가겠다 협박을 일삼았다. 이것이 직접 동인 중 하나였다. 굳이 저 일이 아니라 해도 왜 문화재라 하면서 자연유산까지 포함하느냐는 불만이 팽배했던 건 엄연한 사실이다. 둘째 그 하위 분류는 더 처참해서 일정한 준거나 기준도 없는 막말대잔치가 벌어졌다. 모양이 있고 없고가 기준이면 오직 유형과 무형이 있을 뿐인데 민속문화재가 따로 있고 기념물도 따로 있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잡자 나서 만든 것이 국가유산기.. 2024. 3. 12.
문화재청 핵심 존재 가치는 지정이 아니라 서비스다 국립문화재연구원더러 나는 고고학 발굴조사 이젠 손떼야 한다는 말 여러 번 입이 아프게 지적했다. 지들이 왜 발굴이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문화재청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정 중심에 행정이 가 있다는 점이다. 이 놈들은 지정하는 것 아니면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없다. 지정이 그 행정 일부일 수는 있지만, 이젠 이 지정 업무도 손떼야 한다. 대국민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한가롭게 지들이 지정 놀음이란 말인가? 이 알량한 일을 권력이랍시고 까불 생각 말고 이 업무는 손을 완전히 떼고, 이 업무는 문화재위원회를 완전히 독립케 하고 그쪽으로 완전히 넘겨야 하며, 문화재청은 그에서 남는 여력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말로만 문화재 서비스? 웃기는 소리 좀 작작하고,.. 2024. 3. 12.
고려와 서하, 직접 접촉이 없는 희한한 교유 역사학을 통용하는 교류 혹은 국제관계라면 으레 직접한 접촉을 말하지만, 천만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간접파동이다. 정보유통이 제한되었다고 생각하는 전통시대로 갈수록 이걸 따지는 작자가 그리 많은데, 내가 볼 땐 더 중요한 것이 직접 교유가 없는 교유다. 고창국과 고구려, 이들은 직접 통교가 없었다. 물론 있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없었다고 보아도 대과가 없다. 물론 당나라에 조공할 적에 사신단끼리 마주하며 필담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연 교유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고구려는 알고 있었다. 고창국이 망했다는 사실을. 그 망한 일에 고구려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하와 고려. 보다시피 서하와 고려가 직접 접촉할 창구는 없다. 가로 막힌 데다, 저쪽으로 가려면 일단 송이.. 2024. 3. 12.
遼가 강이 아닌 지역을 말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요동遼東 요서遼西가 달라진다. 저 요동군 요서군은 말할 것도 없이 遼를 기점으로 그 동쪽이라 해서 요동군이라 하고, 그 서쪽이라 해서 요서군이라 한 것이다. 이를 압도적으로는 遼를 강으로 보아 이 강을 기점으로 그 동쪽을 요동군이라 하고, 그 서쪽을 요서군이라 구분한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이 遼라는 강을 지금의 어느 강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한다. 이른바 강단사학이니 재야사학이니 가릴 것 없이 저 遼를 강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하등 차이가 없다. 그 강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지금의 요하遼河, 요수遼水로 보는 이른바 강단사학과 그렇지 않은 다른 강으로 지목하는 재야가 갈라질 뿐이다. 하지만 저 遼가 강이 아닌 지역이라는 어찌 할 것인가? 삭朔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 관념으로는 대.. 2024. 3. 12.
서울서 만나는 태안 앞바다의 보물들 한성백제박물관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태안해양유물전시관)와 함께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한 모양이라 그네들 통지에 의하며 이번 전시는 태안 바닷속 수중 발굴을 통해 찾아낸 수중 문화유산을 조명하는 자리로서, 수중 고고학의 역사와 발굴 방법도 함께 소개한댄다. 이 자리에는 2007년 수중 탐사를 통해 발견된 '태안선'을 비롯하여 '마도 1,2,4호 침몰선'과 함께 발견된 대표 유물들을 선보인댄다. 또한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자 5건이 선보이며,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백제 유물도 함께 소개한다고. 𝟐𝟎𝟐𝟒년 특별전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 전시기간 : 𝟸𝟶𝟸𝟺. 𝟹. 𝟸𝟹.(토) ~ 5. 19.(일) ✸ 전시장소 :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 #한성백제박.. 2024. 3. 12.
[벌집 쑤신 국가유산법] (3) 지역을 이토록 철저히 개무시하는 중앙정부부처 없다 김현모가 문화재청장을 하던 시절이던가? 암튼 이때 기초 지자체에서 문화재 업무를 수행하는 과장 자리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과장으로 승진한 일이 있었다. 학예직 과장 승진은 하늘의 별을 따기 보다 어렵다. 그런 자리를 뚫고 올라섰으니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물론 그 전에 경주시청 이채경과 부여군 여홍기, 원주시청 박종수가 먼저 뚫기는 했다. 한데 그 전에도 그랬고, 저들이 추가로 승진 코스를 탔음에도 문화재청에서는 그 흔한 축하 전화 한 통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지금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으로 옮긴 강경환이 문화재청 차장 시절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강 차장께 진짜로 부탁했다. 저들 학예과장 승진자들 문화재청장 명의로 축하 화한이라도 보내야 한다. 이런 요지였다. 그렇게 했다. 나로서는.. 2024. 3. 12.
향토鄕土가 일제 잔재라는 얼빠진 문화재청 향토유산 향토문화재라 해서 문화재를 구성하는 한 부문이 있으니, 그 개념은 차치하기로 한다. 한데 이 향토라는 말이 일제잔재라는 말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래서 한다는 말이 지역유산이라는 대체어를 종용한다는 말도 들린다. 향토鄕土가 일제 잔재? 어떤 놈이 이 따위 망발을 일삼는단 말인가?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명인 열자列子가 지었다 하지만, 진한 시대 그 이름을 가탁한 문헌이라는 견해가 득세하는 열자列子 중에서도 천서天瑞 편에 보이는 다음 구절은 무슨 개뼉다귀인가? “有人去鄉土,離六親,廢家業。” 무슨 뜻인지 말해줘? 어떤 사람이 있어, 그가 향토鄕土를 떠나고 육친을 이별하고서 가업을 폐한다. 이 경우 향토는 전후맥락으로 보아 고향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열자가 일제 잔재야? 제말 말 같은 소.. 2024. 3. 12.
[벌집 쑤신 국가유산법] (2) 중앙과 지방의 괴리 국가유산기본법은 무엇보다 기존에 문화재로 통용하던 말을 '국가유산'으로 일괄 교체할 것을 주문하고 강요하고 윽박하며 법제화했다. 이 문제가 초래할 심각성은 실은 법령 제정 단계에서 많은 지적이 있었거니와, 이를 문화재청은 지금은 국가보훈부로 이름을 바꾼 국가보훈처로 돌파하고자 했다. 국가라는 말이 주는 군국주의 냄새를 국가보훈처도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는 요지였다. 또 마침 중국에 보니 국가문물국이 있다. 하지만 누차 이야기하지만 문화재라는 용어가 유산 heritagea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이번 법령 체제 개편의 가장 큰 이유인 자연유산의 포괄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이지만, 지들이 중앙정부 기관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공포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중앙정부 주도 냄새와 군국주의 냄새가..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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