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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비서 이인직 , 같은 '신소설' 작가로 이름 높은 국초 이인직(1862-1916). 그는 상당히 소신있는(?) 친일파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완용(1858-1926)의 비서 노릇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완용이 남긴 에도 이인직이 나온다. 1911년 4월 16일, 이인직은 항아리(병?) 하나를 들고 이완용을 찾는다. 이인직이 '가모식 석유加茂式石油'의 일로 그 물건이 담긴 작은 항아리 하나를 들고 와서 그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만약 그가 좀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성냥불 하나에 역사는 바뀌었겠지만, 그럴리가. "백작 각하, 이 석유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같은 썰을 푸는 것으로 그날의 만남은 끝이었다. 근데 '가모식 석유'가 뭘까? 2024. 10. 5.
논문이라 딱딱하단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게 아니라 다루는 주제 자체가 구닥다리라서 하품날 뿐이다. 더 간단히 말해 논문감도 안되는 글을 씨부렁거렸기 때문에 딱딱할 뿐이다. 논문 독자가 셋? 저자 본인 학회 간사 심사자? 웃기는 소리다. 읽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 시장에서 버림받았을 뿐이다. 논문 문체 팔아 넘어갈 생각마라. 애초 팔리지도 않을 글을 논문이라 쓴 네 잘못일 뿐이다. 내가 왜 논문 안 읽다 하는 줄 아는가? 읽고 싶게 만드는 논문이 없어서다. 재미가 있고 흥미를 끈다면 무슨 문체가 대수겠는가? 얼마나 재미없는가? 재미 하나도 없다. 왜 이딴 걸 싸질렀느냐 한숨 나오는 논문이 백편 중 아흔아홉 편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것이 아니라 재미라고는 애초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기에 버림받을 뿐이다. 인용지수? 웃기고 있네. .. 2024. 10. 5.
거지소굴을 배신하는 칼라풀 선사시대 팜플렛 이 고고학 관련 축제에서 내가 주목하는 한 가지는 저 칼라풀한 홍보 팜플렛이다. 오천년 전 신석기시대 한강변이라고 지금과는 왕청 나게 달라 가을엔 흑백색 단풍이 들었겠는가? 저들이라고 색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거지 같은 옷만 걸치고 아니면 벌개벗고 살았겠는가? 거의 모든 고고학 현장이라 해서 우리네 조상님들 생활상이라고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면 천둥벌거숭이라 곧 쓰러지거나 빗방울 죽죽 새어들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맨땅에 움집이라 해서 둥글게 땅 파서 거기다 덕석 하나 깔아놓고는 천둥벌거숭이로 아니면 동물가죽 가공도 하지 아니하고선 소매란 소매 팔뚝이라는 팔뚝은 엄동설한에도 다 내어놓은 거지몰골로 재현해 놓았다. 저들이라고 예술성이 없었겠으며 울긋불긋 화려한 색상이 아름다운지 몰랐겠는가? 저 빗살무늬.. 2024. 10. 5.
을축년대홍수 기념 나청호 대선사 봉은사 학술세미나 대략 2년 전쯤 이병두 선생 주선으로 강남 봉은사로 원명 주지스님을 만날 일이 잠깐 있었다. 그에서 나는 스님께 2025년이 을축년대홍수 100주년 되는 해요, 또 마침 당시 대참사에서 이곳 주지로 계시던 나청호 선사가 한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이재민을 무수히 구제하시고, 또 그 내력을 담은 기념비까지 사찰 경내에 있으니, 그냥 넘길 수는 없을 듯하니 뭔가 기념사업을 꾸려 봤으면 좋겠다 말씀드렸다. 그때 드린 말씀이 저 학술세미나로 직접 연결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함께 자리한 이병두 선생이 계속 이런저런 인연을 고리로 봉은사에 간여하니, 선생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을축년대홍수 학술세미나를 말씀드리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해 본다. 이 자리는 봉은사가 주최하는 곳인 까닭에 나청호 선사 구제활동.. 2024. 10. 5.
why를 묻고 so what을 응대해야 하는 글 누누이 입이 아프도록 한 말이다. 이 말을 또 해야 하는 내가 갑갑하다. 내가 하는 일이 학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So what에 대한 질문에 답이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what과 how에만 머물렀다는 뜻이다. 언제나 학문은 why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언제 짓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구체로 어디에서 나타나며 이딴 게 학문이겠는가? 왜 그들은 벼농사를 선택했으며, 그것이 불러온 파장은 무엇인가? 이것이 학문 아니겠는가? 조 수수 기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물음을 던져야 한다. 유리? 로만글라스? 로만글라스가 어디에서 나왔고 그 양태는 어떠하며, 그 퍼진 양상은 어떠한가? 이딴 게 어찌 학문이리오? 그들이 왜 로만글.. 2024. 10. 5.
농민 약올리는 민농시憫農詩 사대부쯤 되면 민농시 하나쯤은 남겨야 했는지 왠만한 선비들 치고 민농시 하나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 없고 혹자는 이를 장편 서사시로 써서 이에 대한 연구서까지 있는 줄 안다. 민농시-. 나보다 못한 자에 대한 연민-. 다 좋다 그런데-.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잘 알려진 훈민정음 서문이다. 여기까지는 딱 민농시다. 뭐 말하려고 해도 글자를 알아야 쓰지? 정말 불쌍한 놈들이겠다. 문제는 다음이다.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그래서 새로 글자 28개를 만든다고 하지 않나. 불쌍하다고 하면 뭘 하나. 그 다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농민들이 불쌍하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 내가 본 민농시 중에 여기에 답 달아 놓은 민농시는 한 번도.. 2024. 10. 5.
전통시대 농부는 모두 사장님이다 전통시대에 농법이 바뀌는 것은 모두 경제적 이유가 있다. 벼농사를 하게 되었다면, 논을 만들어 농사 짓게 되었다면, 그 이전에는 불을 질러 여러 군데를 떠돌며 농사를 지었다면 모두 경제적 이유가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다. 바로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학문이다. 벼농사를 지었네가 문제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했으며 그결과 사람의 생활은 어떻게 변해갔는가 이것을 밝히는 것이 학자의 소임이라는 뜻이다. 전통시대 농부는 모두 사장님들이다. 이익이 안 되는 일은 일체 하지 않는다.이들은 심지어 농사를 게을리하고 놀아도 거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있다.  이런 경제적 이유에는 눈을 감고 개혁이라고 기껏 내놓는 것이 여전제, 정전제, 균전제 등 자기들도 하라면 꽁무니를 뺄 헛소리를  .. 2024. 10. 5.
삼국지 배송지주裴松之注 출간 진척 상황 by 김영문 * 완역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지 오래되었는데, 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분량이 워낙 방대하여 출판사에서 출간 작업과 일정 결정에 애를 먹는 듯합니다. 올해 안에 [위지魏志] 부분이라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배송지주]와 관련된 정보를 몇 차례 올려드리겠습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편찬서진西晉의 진수陳壽(233~297)는 위나라 관찬官撰 위서魏書(王沈)와 사찬私撰 위략魏略(魚豢)을 바탕으로 정사 삼국지 위서魏書를 편찬했고, 오나라 관찬 오서吳書(韋昭)를 바탕으로 삼국지 오서를 편찬했다. 그러나 촉한은 사관史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관찬 사서史書가 없었다. 따라서 진수 자신이 촉한에 있을 때 보고 들은 견문과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삼국지 촉서蜀書를 썼다... 2024. 10. 5.
모내기 없는 논은 무슨 장점이 있는가 우리가 아는 논은 모내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앙과 논은 일체라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그런데 논은 이앙과 함께 생긴 것이 아니다. 이앙이 있기 전부터 논은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나온다. 논은 왜 필요했을까? 왜 밭농사하던 동네에 논이 생겨났겠는가 말이다. 쌀을 키우려고? 쌀은 논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다. 논은 이앙이 보편화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한국땅에 있었다. 논은 왜 출현한것일까? 잡초 때문에? 원래 벼는 수생식물이라서? 그게 아니다.   논은 언젠가도 여기 썼지만, 화전으로 돌아다니며 간신히 농사 짓던 신석기시대 농사가 논이 도입되면서 매년 연작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대대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매년 연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척박하던 한반도 땅에 비로소 몇.. 2024. 10. 5.
농촌의 진화, 그것을 팽개친 역사가 무슨 역사리오? 우리가 알고 있는 농촌은 요즘 젊은 세대라면 경지정리 딱딱된 시골만 알 테고 필자 세대만 되도 그 이전의 농촌, 소위 "근대화" 이전 농촌을 아주 어린시절기억으로 경험한 바 있는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70년대 이전 농촌만 해도 이미 20세기를 거치며 상당히 진화한 형태의 농촌이었고, 20세기 이전 농촌은 그와는 또 달라서 강아지 만한 돼지, 알을 간신히 낳는 닭, 도무지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개, 조랑말 만한 말 등이 홍수만 오면 무너지는 보로 논에 물 대가며 봄만 되면 모내기가 안 돼 농사망친다고 농민들이 울부짖는 그런 농촌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모내기 이전 농촌은 이와는 또 달랐고, 휴경이 극복되기 이전 농촌은 이와는 또 달랐으며, 도작이 시작되기 전 화전을 방불한 돌려.. 2024. 10. 5.
어영부영 보내 버린 파주 혜음원지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그리고 그 후신이랄 수 있는 한백문화재연구원이 장기 연차 발굴을 벌인 파주 혜음원지는 왕립 호텔을 겸한 고려시대 사찰 갖춤 역원驛院 시설로는 실상 제대로 조사한 첫 고려시대 유적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의의를 둬야 한다. 이 발굴은 마침 내가 현역 시절이고, 더구나 그 시절 대부분 내가 문화재를 담당하던 시절이라, 발굴 연차마다 거의 빠짐없이 내가 직접 현장을 목도한 현장이라 더 각별하거니와 지금 현장은 보존정비가 실상 마무리되고 그 전면에는 전시교육관까지 들어선 마당이라 이제는 그 발굴하던 시절 여러 면모를 맛볼 수는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 혜음원지 발굴은 저와 같은 점들에서 그 조사 내력과 그 발굴 성과를 총정리 혹은 집대성한 단행본이 두어 종은 이미 선보였어야 하고, 그 .. 2024. 10. 5.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소리가 하도 많이 들려서역사를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나라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한국처럼 역사의 기본 팩트도 제대로 조사 안 된 상태에서 자신의 욕망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 놓는 나라도 없다. 당장 20세기 이전에 소, 돼지, 말, 개, 닭이 어떤 품종이 길러지고 있었는지, 쌀, 기장, 조, 수수 콩, 보리는 도대체 어떻게 재배되고 있었는지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것과는 별개로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단다. 소, 돼지, 말, 개, 닭, 쌀, 기장, 조, 수수, 콩, 보리는 모르는데 다른 역사는 제대로 알까. 필자가 보기엔 우리모두가 입에 달고 사는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할 때그 역사는 욕망의 다른 말이다. 팩트가 아니라. 그 잊.. 2024. 10. 5.
강서엔 곱돌, 전곡엔 짱돌 진짜 돌잔치>> 전곡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돌이죠. 2024.10.19. 토요일 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공지하겠습니다. (진짜 돌잔치...기대해주세요) #10월축제 #연천가볼만한곳 #서울근교나들이 #아이와가볼만한곳 *** 강서 허준박물관 곱돌 전시를 돌stone 잔치라 했더니 전곡에서도 돌잔치라고 그 털보 관장이 개뻥을 친다. 공립박물관들이 돈이 없나 보다. 돌잔치 벌이는 걸 보니. 2024. 10. 4.
어떤 박물관 도서실에 대한 생각 필자가 다닌 대학은 80년대에 이미 커리큘럼이 빡빡해서 도대체 휴강도 공강도 없고 시간표가 기계처럼 물려 여름방학 한달 겨울방학 두달을 빼고는 일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 시간 없이 돌아갔다. 아무리 빡빡한 스케줄이라도 사람은 살아야겠는지라 필자도 틈틈이 강의 땡땡이를 쳤는데 그때 주로 도망가 한숨 돌린 곳이 지금도 대학로에 있는 학림이라는 카페, 그리고 또 하나는 의대 도서관이었다. 2층에 올라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전자도서관이란 게 없던 시대인지라 도서관 장서가 전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정말 여기 가면 별의별 책들이 다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로 대한제국시대까지 올라가는 의대 학술저널이 있는가 하면 의학사와 인문학 관련 책까지 있어 장서실에 들어가면 정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학술지도 해방 .. 2024. 10. 4.
사로가 곧 신라지 어찌 모태란 말인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기원전 1세기 이래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흔적이 나왔다고만 하면 사로국 운운하며 그것이 신라의 모태라 하는 작태라 나 역시 한때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런 말을 쓴 적 있는 듯하며 언론에서도 그리 흔히 쓰기도 한다. 심지어 고고학에선 어디서 그런 쓰레기를 주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원삼국이란 개떡 같은 말을 버젓이 쓴다. 쓰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외려 자랑스러워한다. 저 말 개소리다. 고려왕조를 일러 태조 이래 현종까지를 고려 왕조 모태라 하며 조선왕조를 일러 원심 분리하고는 태조 이래 성종까지를 조선왕조 모태라 하던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잔치다. 왜 사로가 신라의 모태란 말인가? 신라일 뿐이다. 물론 그것이 국호 변동에 따른 단순 구분이라 한다면야.. 2024. 10. 4.
비단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한 마한 후한서나 삼국지가 그리는 3세기 중후반 이전 삼한 사회를 다름 아닌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들이 바로보는 관점을 어찌 일률로 논하겠느냐마는 나는 원시미개주의 그 짙은 그림자를 본다.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국가 체계, 이른바 중앙집권적 통제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했다는 관점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는 이 시점, 그러니깐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삼아 이후 신라와 백제를 제대로 된 국가 혹은 왕조로 보려 한다는 점에서 내 판단은 유효하다가 본다. 더 간단히 말해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백제는 국가다운 국가, 왕조다운 왕조도 아니요 동네 꼬꼬마 대장 같은 그런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이 삼한 사회가 그리 간단한가?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허심하게 넘기는 대목으로 양잠이 있다.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을 알며,.. 2024. 10. 4.
용미리 부처님 독대를 신청하며 각중에 기돗발이 필요해서 기돗발 센 곳으로 주말은 행차하려 한다. 2011년 혹은 2012년 무렵 찾았을 때라고 기억한다. 물론 이 파주 용미리 석불은 수시로 다니곤 했다. 첫째 내가 필요해서 둘째 수도권 가차운 곳에서 보여줄 만한 곳이라 해서 그렇게 해서 다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저 부처님 용안 뵌 지 오래라 느닷없이 뵙고 싶다. 이 부처님 보다시피 사람다운 냄새 물씬해서 더욱 좋다. 부처님이라 해서 저쪽 간다라처럼 빼빼로여야겠으며 아니면 통말고려처럼 풍만하거나 펭귄 다리여야 하겠는가? 또 시대 추세에도 맞는 부처님 아니겠는가? God 부처님이니 말이다. *** 근자 현장을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그 아래 용암사라는 조계종단 사찰 용암사가 아래서만 부처님을 뵙게 해 놓았다 해서 아쉬웠다 하거니와 이곳은.. 2024. 10. 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 문화재청장 서정배 (1) 풍납토성과의 운명적 만남 한국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모태를 구황실재산사무국을 삼는다. 이 기구가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함으로써 문화재관리국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차관급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이지만 출범 당시는 지금의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산하 외국外局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궤를 같이한 문교부는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거니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 단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에 견주어 권능은 형편 없었다. 초대 관리국장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한 한당욱.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7월 24일 소속이 문화공보부로 넘어간다. 이름은 그대로 문화재관리국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공보가 따로 독립하자 문화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내가 문화재 분.. 2024. 10. 4.
한원翰苑, 고대사의 도토리 버전 일본에서 와와!!! 한다고 줏대없이 우리도 와와!! 하며 따라가는 분야가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지금 계속 거론하는 고고학 분야 도토리, 딱 그 버전에 해당하는 고대사학계 버전이 한원翰苑이라는 어디 듣보잡 문헌이다. 다 사라지고 1권인가 하는 분량만 꼴랑 남았는데, 상어한테 다 뜯어먹히고 뼈다구만 남은 헤밍웨이 다랑어랑 진배없어, 그 남은 뼈다귀 붙잡고 일본이 와! 하니깐 줏대 없는 한국사학계도 와! 무슨 보물이나 되는양 난리버거지를 피운다. 뭐 대단한 문헌 아닌가 하겠지만, 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빈쭉정이다. 이르기를 당 고종 현경 5년(660년) 이전에 장초금張楚金이라는 자가 찬술하고 그에다가 송나라 시대에 옹공예雍公叡라는 자가 주석을 가한 유서類書, 곧 분류식 백과사전이라 하는데 남은 건 꼴랑 그 권 제.. 2024. 10. 4.
[마한 성곽론 점검] (1)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증언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그 모순을 점검한다.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현재 전해지는 판본이다. 다시 말해 이를 점검하는 두 가지 절대적인 사료, 곧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과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 두 가지다.그 원본이 등장한 이래 이미 천년이 넘게 흘렀으니 그것이 그 원본 그대로 현재로 전승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따라서 이 시점에서 저 제목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오로지 현재 전해지는 후한서와 삼국지 판본을 검토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둔다. 그렇다면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이와 관련해서 후한서와 삼국지는 비슷한 내용인 듯하면서도 자세히 따지면 전연 다른 내용도 없지 않으니 이를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런 기초 작업이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제대로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2024. 10. 4.
학술논문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 1996년 경 필자의 첫 번째 학술논문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320편 정도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펴냈는데 필자가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을 뜻대로 다 펴내서 쓴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심사를 거쳐 출판하다 보니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으로, 심사에서 지적될 만한 근거가 완벽하지 않은 논리는 알아서 쓰지 않고, 그 와중에서도 조금 무리해서 글로 나간 것들은 예외없이 심사과정에서 삭제를 권유받아 출판을 하고 나면 논리적으로야 더 탄탄할지 모르겠지만 논문이 뼈다귀만 남고 살점은 다 뜯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논문이 수백 편이라고 한들 내놓을 수 없는 스토리 하나 변변히 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항상 아쉬웠다고 하겠다. 이제 60을 넘어서며 이 블로그에 선언하였듯이 학.. 202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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