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17648

Gwanghwamun or Main Gate of Gyeongbokgung Palace Founded in 1395 by the first king of the Joseon Dynasty, Gwanghwamun is the main gate of Gyeongbukgung Palace. Roughly meaning “may the light of enlightenment blanket the world,” the name symbolizes the resounding dedication that the people of the Joseon Dynasty had in creating a new dynasty. Constructed solely out of granite, its center is an entrance that resembles a rainbow, called Hongyemun .. 2018. 3. 12.
旧因州池田屋敷表門(黒門) or Gate of the Inshu-Ikeda Residence 重要文化財この門は、もと因州池田家江戸屋敷の表門で丸の内大名小路(現丸の内3丁目)に建てられていたが、明治25年、芝高輪台町の常宮御殿の表門として移建された。のちに東宮御所として使用され、さらに高松宮家に引き継がれる。表門は昭和29年3月、さらにここに移建して修理を加えたものである。創建年代は明らかでないが、形式と手法からみて、江戸時代末期のものである。屋根は入母屋造、門の左右に向唐破風造の番所を備えており、大名屋敷表門として最も格式が高い。昭和26年9月、重要文化財に指定。 Important Cultural PropertyGate of the Inshu-Ikeda ResidenceKnown as "Kuromon (Black Gate)" This was the gate to the Edo (Tokyo) residence of the Ikeda famil.. 2018. 3. 11.
월광보살(月光菩薩) 梵名은 Candra-prabha. 월광보살에 관한 出處를 보면 그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이에 대해서는 3종류의 解釋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월광보살은 印度 古帝王으로 釋尊이 過去世에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의 前身이라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卷6, 《월광보살경(月光菩薩經)》, 《대보적경(大寶積經)》 卷80에 기재된 구절에 의하면 “此王具有大威德, 後施頭予勞度差婆羅門, 滿足檀波羅蜜行, 又稱月光菩薩”이라 한 것이 그 증거이다. 두 번째는 佛世 時에 中印度 舍衛國 波斯匿王의 異名이라는 것이다.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 卷上(大八·八二五中)에 이르기를 “舍衛國主波斯匿王, 名曰月光”이라 한 것이 그 증거다. 波斯匿은 梵名이 Prasenajit이며 팔리어 이름巴利名은 Pas.. 2018. 3. 11.
심덕잠(沈德潛. 沈德潜. 1673~1769) 淸代 文學家이자 시인. 字는 확사(確士), 號는 귀우(歸愚)이며 강소성(江蘇省) 장주현(長州縣)人이다. 일찍부터 詩로써 이름이 높았다. 과거에 거듭 실패하다 1739년 67세에 겨우 進士가 되었다가 뒤에 건륭제의 총애를 받고 예부시랑(禮部侍郞)까지 올랐으며 1747년 고령 때문에 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시작과 저술로 보냈다. 청대 초기에 왕사정(王士禎)이 시에 신운설(神韻說)을 제창한 데 맞서 소위 격조설(格調說)을 주창하니 이는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함이 詩敎”라는 도덕적인 문학관에 기반해 바른 골격 위에 음률의 조화를 중시하는 시 정신을 찾는다. 이를 위해 격조파는 성당(盛唐)으로 복고하자고 외쳤으며 明代 전칠자(前七子)라든가 후칠자(後七子), 淸代 심덕잠 일파가.. 2018. 3. 11.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平田篤胤>), 신도(神道), 적현태고전(赤縣太古傳) 2005.05.28 23:58:35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 1776.9.25~1843.10.4 : 안영(安永) 5~천보(天保) 14년 복고신도(復古神道)를 주창한 에도시대 말기 일본 사상가로, 천황의 신성(神性)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왕정복고를 주창하는 존왕파(尊王派)에게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그는 號를 이부키노야(氣吹舍) 혹은 마스게노야(眞菅乃屋)라 했다. 아버지는 出羽國 아키타(秋田) 번사(藩士)인 大和田淸兵衛 平田祚胤이다. 祿高 100석인 平田祚胤에게 그는 넷째 아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하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려서는 아사미 게이사이(?見絅?.1652~1712)의 학풍을 잇는 中山靑我에서 한적(漢籍)을 배우고 여기에서 國學을 닦음으로써 나중의 古道 硏究의 실마리를 열.. 2018. 3. 11.
쓰다 소우키치(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つだ そうきち) 1873.10.3~1961.12.4(明治 6~昭和 36) 일본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면 '쯔다 소우키치',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쓰다 소키치다. 歷史學者. 본명은 津田親文이다. 기후현岐阜縣 米田東?井의 士族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7년(明治 20) 國民新聞 창간호의 田口卯吉 논설 「國を建つるの他は幾何ぞ」에 깊은 감명을 받고는 나중에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敎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입학해 1891년(明治24)에 졸업한다. 澤柳政太郞에게 寄寓했다. 그 뒤 富山縣 本願寺 別院 部屬學敎 교수로 일하다가 상경해 시라토리 구라키치(백조고길白鳥庫吉) 후원을 받는다. 또 中等敎師를 군마현립중학群馬縣立中學 치바현립중학千葉縣立中學 宇都宮中學 치바중학교千葉中學校 교사, 독일협회중학교獨逸協會中學學校 교사 등으로 일한다. 교.. 2018. 3. 11.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도홍경陶弘景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현존하는 중국 가장 오래된 전문 본초학서다. 그 성립 연대는 이론이 분분하나 기원전 1세기 무렵 전한 말기가 아닐까 한다. 본초(本草)란 글자 그대로는 근간이 되는 풀이란 뜻이니, 예서 본초는 말할 것도 없이 약초를 말한다. 신농(神農)이라는 말이 들어간 까닭은 그 저자가 神農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니, 신령스런 농사꾼이라는 액면 글자가 시사하듯이, 신화상 인물인 그는 농업을 일으킨 시조로, 특히 병 치료에 맞는 약초를 찾아 이것저것 맛보느라, 독물에 중독도 되고 했다고 한다. 이런 神農이라는 신화상 인물에 그 저자를 가탁한 것이 신농본초경이다. 약초로서의 '본초(本草)'라는 말은 《한서· 평제기(漢書平帝紀)》에 가장 빠른 용례가 검출된다. 하지만 本草라는 말에 끌려 반드시 초본.. 2018. 3. 11.
무상비요無上秘要 운급칠첨雲笈七籤 정통도장正統道藏 도교의 3대 경전 결집이다. 정확히는 3대 경전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통 경전이라 하면 개개 경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3대 경전은 경전들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교에 빗대어 말한다면 대장경大藏經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첫째, 무상비요無上秘要이니, 이는 북주北周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재위 561~578)이 통도관通道觀 학사學士에게 명해 편찬케 했다. 《구당서 경적지舊唐書經籍志》와 《신당서 예문지新唐書藝文志》 및 《송사 예문지宋史藝文志》에 의하면 72卷이 현존한다고 했다. 현존 《정통도장正統道藏》 태평부太平部 목록에는 100권이라 하지만 결실이 있으니 1~2권, 10~14권, 36권, 58~64권 총 31권이 그것이므로, 실제 현존 권수는 69권이다. 따라.. 2018. 3. 11.
시경(詩經) : 특히 구성론과 역대 주석 이하는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시경집전 上' 전통문화연구구회, 1996.10 초판3쇄 '이 책에 대하여'(5-8쪽)를 추린 것임. 1. 《시경(詩經)》의 출현 증거 논어 술이편(述而篇) “공자께서 평소에 늘 말씀하신 것은 시와 서와 예를 행하는 일이었다”(子所雅言 詩書集禮) 논어 태백편(泰伯篇) “배우는 자는 시에서 선한 마음을 흥기시키고 예에서 행실을 확립하며 악에서 완성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 계씨편(季氏篇) “(아들 伯魚에게) 너는 시를 배웠느냐? 사람이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學詩乎 … 不學詩 無二言) 같은 계씨편 “사람이 되어가지고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얼굴을 담장에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 논어 양화.. 2018. 3. 11.
류서(유서·類書), 분류식 백과사전 '유서'란 글자 그대로는 분류식 책이라는 뜻인데, 간단히 말해 분류식 백과사전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백과사전은 대개 가나다 혹은 ABC 순서로 표제어를 배열하고, 해당 항목마다 그 개념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하지만, 이 유서(類書)라고 하는 백과사전은 동아시아에서 태동해 발전한 것으로, 주제 혹은 키워드별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까닭에 類書는 해당 분류식 개념어를 적출하고는, 그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주요한 소재로 활용한 先代 문헌에서 관련 구절을 그대로, 혹은 요약해서 배열하는데, 당나라시대에 나온 이런 종류로 대표적인 4가지로 《북당서초》와 《예문유취》와 《초학기》와 《백씨육첩》이 있으며, 이런 사업이 후대로 올수록 더욱 극성을 부려 특히 북송시대에는 《태평광기》라든가 《태평어람太平御覽.. 2018. 3. 11.
"여가 주차장이라?" 그제다. 점심시간 짬을 내서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 입구 안내판을 보니 왕실의례와 관련한 공간을 근자에 재단장했는지 혹은 새로 꾸몄다 했으므로, 이곳을 돌아봤다. 그곳을 돌아보고는 위층으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는데, 그 중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할머니 부대랑 마주쳤다. 각중에 지나치는 나를 붙잡고 개중 어떤 할매가 묻는다. "아재, 일로가마 주차장이지요?""엥? 뭔 주차장? 할매 주차장 가야대여?" 같은 일행이지 싶은 다른 할매가 나랑 같은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오다가 문제의 주차장 할매한테 말한다. "니리갈꺼 업써. 암꾸도 볼끼 엄써. 차 두대밖에 엄써. 고마 올라가.""그라까? 볼끼 이키 없노? 가 고마"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 지하1층 홀에는 저 순종어차를 갖다 놓았다. 아마도 동네.. 2018. 3. 11.
임금과 신하, 재물과 베품 "천하에 부릴 만한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그런 그를 알아보고도 부릴 만한 임금이 없음을 걱정하라. 천하에 쓸 만한 재물이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재물이 있어도 그것을 분배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管子 牧民篇에서 2018. 3. 11.
덕동댐을 찾아서(1)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과 덕동호 덕동댐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입안하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일환으로 건설됐다. 경주를 古都 분위기에 어울리게 개발한다는 취지를 표방한 이 개발계획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으니, 하나가 경주 분지 일대에 산재하는 신라시대 유적 환경을 정비하는 ‘사적지구 정비계획’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관광과 연계한다는 취지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후 시설인 ‘관광시설 계획’이 그것이니, 보문관광단지 개발은 두 번째 계획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 두 계획을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 정비 등 ‘관광환경 및 기반시설조성’ 계획도 다른 주축을 이룬다. 덕동댐은 이 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직접 연동한다. 1971년 건설부가 작성한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을 보면 먼저 관광시설 계획 투자 방향으로.. 2018. 3. 10.
Titus Livius (Livy), The History of Rome, 리비우스 로마사 책 전체에 대한 영어번역은 아래 참조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2.0026 http://mcadams.posc.mu.edu/txt/ah/Livy/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는 고대 로마 역사가다. 라틴 이름이 Titus Livius이며, 영어로는 Livy로 표기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원전 59년 혹은 64년 파타비움Patavium 출생이니, 이곳은 베네치아(Venetia), 현재의 이탈리아 파두아Padua다. 서기 17년 고향에서 죽었다. 가이유스 살루티우스 크리푸스(Gaius Sallustius Crispus, 혹은 살루스트Sallust), 그리고 타키투스Tacitus와 더불어 고대 로.. 2018. 3. 10.
《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 약칭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비된 전국 지방지리 총서로서 전 40권이다. 체례가 완비됐으며, 전국을 커버하니 100도(道) 47진(鎭)을 강(綱)으로 삼고, 부(府)·주(州)·현(縣)을 목(目)으로 삼았다. 각 지방 행정구역별로 그 연혁을 기술하되, 위로는 삼대(三代)로 소급하며, 아래로는 이 책이 편찬된 당대(唐代) 원화(元和) 연간에 이른다. 편찬 책임자는 이길보(李吉甫, 758~814)이니, 字를 홍헌(弘憲)이라 하며 조주(趙州) 찬황(贊皇) 사람이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이서균(李棲筠)의 아들인데, 음보(廕補, 음서)로 좌사어솔부창조참군(左司御率府倉曹參軍)이 되었다. 정원(貞元) 연간 초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고 관직이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 2018. 3. 9.
《괄지지(括地志)》 애초 전 550권이며 서략(序略) 5권이 더 있었다. 당초(唐初)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넷째 아들로 위왕(魏王)에 책봉된 이태(李泰)가 주편한 거질 지리서(地理書)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와 고야왕(顧野王)의 《여지지(與地志)》의 양대 先代 지리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지리서 체례를 열었다고 평가되며 여기에서 이룩한 지리서 편찬 전통은 후대의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와 《태평환우기(太平圜宇記)》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미 남송(南宋)대에 이르러 그 원전은 망실되어 버리고 그 잔편(殘篇)들만이 후대 다른 서적들에 산발적으로 인용되어 전할 뿐이다. 편찬 책임자 이태는 “好士愛文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아버지 태종 또한 그를 총애해 그에게 문학관(文學館)을 세우도록 허락했다. 이에 .. 2018. 3. 9.
《삼보황도(三輔黃圖)》 6권 원저자는 불상이며 성립 연대 또한 알 수 없으나 東漢 末 이전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三國시대 魏人인 여순如淳의 《한서주漢書注》에 이미 인용되기 때문이다.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니 이때는 一卷本 《三輔黃圖》이었다. 그 뒤 南宋 조공무晁公武의 《독서지讀書志》에서 이를 三卷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재直齋書錄題解》에서는 兩卷이라 했다. 《四庫全書總目》은 여수겸勵守謙이 收藏한 六卷本을 저록하면서 佳本으로 간주했다. 육권본은 漢代 三輔 지역의 古跡을 主로 삼으니 특히 長安을 가장 충실이 기술했다. 그 외에 秦漢 시대 三輔 지역의 風俗도 덧붙였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이에서 기록한 궁전과 원유의 제도는 조목별로 잘 분류해서.. 2018. 3. 9.
《續資治通鑑長編속자치통감장편》980卷, 南宋 李燾(1115?~1184) 撰 전문검색은 다음으로 들어가라 http://cls.admin.yzu.edu.tw/Tong/search_main.htm 도합 980卷이며 南宋 이도(李燾, 1115~1184) 撰이다. 宋 太祖 조광윤(趙匡胤) 건륭(建隆. 960)에서 시작해 宋 欽宗 趙桓 靖康(1127年)에 이르기까지 北宋 九朝 168年 역사다. 李燾는 正史와 實錄과 政書에서 채록하고 “旁採異聞, 補實錄, 正史之闕略;參求眞是, 破巧說․僞辨之紛紜”하여 體例는 司馬光 《資治通鑒》을 모방하니 근본을 “寧失於繁, 無失於略”하는 原則에 두었으니 記載에 不同한 곳이 있으며 兩存 是說했다. 周密의 《계신잡지(癸辛雜識)》에 의거할 때 李燾는 재료 수집 시에 “作木廚十枚, 每廚作抽替匣二十枚, 每替以甲子誌之. 凡本年之事, 有所聞, 必歸此匣, 分月日先後次第之,.. 2018. 3. 9.
《태평어람(太平御覽)》 太平御覽 一千卷 宋 李昉 等 編纂 http://www.guoxue.com/wenxian/leishu/0001.htm 北宋시대 전기에 국가에서 편찬한 ‘四大書’ 중의 하나이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이르기를 “宋李昉等奉敎撰. 以太平興國二年受詔, 至八年書成. 初名《太平類編》, 後改名爲《太平御覽》. 宋敏求《春明退朝錄》謂書成之後, 太宗日覽三卷, 一歲而讀周, 故賜是名也.”(송나라 이방 등이 교서를 받들어 편찬했다. 태평흥국 2년에 조칙을 받들어 8년에 책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태평류편이라 했다가 나중에 개명하여 태평어람이라 했다. 송민구는 춘명퇴조록에서 이르기를 책이 완성되 다음에 태종이 날마다 3권씩 보다가 1년만에 독파했으니, 이런 인연으로 이런 이름을 내렸다)라고 했다. 전체를 50개 門으로 나누었으며, .. 2018. 3. 9.
극락(極樂) 산스크리트 原語는 “樂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住하는 世界를 가리킨다.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국토(極樂國土)’라고도 한다. 漢譯 佛典에서는 ‘수마제’(須摩題) ‘수가마제’(須呵摩提) 등이라고 음사(音寫)하며, ‘안락(安樂)’‘안양(安養)’이라고 의역되기도 한다. 수도권 도시 안양은 그 이름이 바로 이에서 유래한다. 漢語인 ‘極樂’은 중국고전에서는 매승(枚乘)의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文選》39) 등지에 보이는데, 그 의미는 “더 이상 없는 즐거움”이다. 또 반고(班固)의 서경부(西都賦) 등지에도 보이는데 “즐거움을 다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至極의 樂”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전에서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아미타경(阿.. 2018. 3. 9.
왕흠약(王欽若) 왕흠약(王欽若. 962~1025)은 자(字)가 정국(定國)이며 북송(北宋) 신유(新喩) 출신이다. 신유는 지금의 新餘東門王家 자리다. 18세에 《평진부론(平晉賦論)》을 지어 문명을 떨쳤고, 북송 태종(太宗) 순화(淳化) 3년(992)에 실시된 순화 진사 갑과(淳化 進士 甲科)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거쳐 재상인 동평장사(同平章事)에까지 관직이 이르렀다. 경덕(景德) 원년(1004) 거란(契丹)이 내범(來犯)하자, 당시 북송 황제 진종(眞宗)은 적을 두려워하여 왕흠약과 진요수(陳堯수) 등의 大臣들이 내놓은 계책을 받아들여 남조(南逃)로 천도하려 했으나 당시 재상(宰相) 구준(寇準. 961~1023)이 힘써 중의(衆議. 여론)를 배척하여 진종에게 단주(.. 2018. 3. 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