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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왕(美川王) 고구려 제16대 왕으로 호양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을불 혹은 우불이며 서천왕 손자이고, 아버지는 고초가 돌고다. 258년 ~ 331년, 재위기간은 300년 ~ 331년이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처음에는 수실촌(水室村) 사람 음모(陰牟)의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일을 매우 고되게 시켰다. 그 집 곁 늪에서 개구리가 울면, 을불에게 버밤에 기와조각과 돌을 던져 그 소리를 못내게 하는가 하면, 낮에는 나무를 해오라 독촉함으로.. 2018. 2. 14.
설계두(薛罽頭)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설계두 열전 : 설계두(薛罽頭) 또한 신라 의관자손衣冠子孫이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며 각자 자기 뜻을 말하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 골품骨品을 따지므로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어도 그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화국中華國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드날려 특별한 공을 세워 내 힘으로 영광스런 관직에 올라 의관을 차려 입고 칼을 차고서 천자 측근에 출입하면 만족하겠다”. 무덕(武德) 4년 신사(진평왕 43년. 621)에 몰래 바다 배를 따라 당에 들어갔다. 마침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가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므로 스스로 천거해 좌무위(左武衛) 과의(果毅)가 .. 2018. 2. 14.
살계두(薩罽頭)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설계두 열전 : 설계두(薛罽頭)도 신라 의관자손이다. 2018. 2. 14.
계두(罽頭) ☞설계두(薛罽頭) ☞살계두(薩罽頭) 2018. 2. 14.
구리내(仇里迺)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벌보말(伐寶靺)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파로(波老)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박모말(朴毛末) 내물왕 때 신라 충신인 박제상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박제상(朴堤上) 2018. 2. 14.
모말(毛末)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박모말(朴毛末) ☞박제상(朴堤上) 2018. 2. 14.
물품(勿品) 박제상 아버지이자 갈문왕인 아도 아들로 정확한 활동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내물왕 혹은 그 이전이다. 최고 관위는 파진찬이다.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 2018. 2. 14.
홍유후(弘儒侯) 유학의 큰 선비로 후작에 봉해진 인물이란 뜻인데, 고려시대에 최치원을 높여 추증한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우리 현종 재위 13년 천희(天禧) 5년 신유(1021)에 이르러 (설총은)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설총이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설총(薛聰) 2018. 2. 14.
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가실(嘉實)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설씨녀(薛氏女)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무관랑(武官郞)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사다함 열전 : (사다)함(含)이 전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죽음을 같이 할 친구(死友)가 되자 약속했는데, 무관이 병으로 죽자 심히 슬프게 울다가 7일 만에 또한 죽으니, 그 때 나이 17세였다. 2018. 2. 14.
백결선생(百結先生) 생몰년 미상. 신라인. 자비왕 때 청빈 혹은 빈한하게 활동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백결이란 백 군데 누볐다는 뜻이니, 그의 행장을 주목한 별명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백결선생 열전 : 백결(百結)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해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에 편치 않은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폈다. 어느 해 연말에 이웃 동네에서 곡식을 방아 찧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굿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 2018. 2. 14.
김수훈(金垂訓)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거인(巨仁)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원걸(元傑)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박인범(朴仁範)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물계자(勿稽子)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물계자 열전 : 물계자(勿稽子)는 나해니사금 때 사람이다. 집이 대대로 미미하였으나 사람됨이 기개가 커서 어려서부터 장대한 뜻을 가졌다. 그때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아라국(阿羅國)을 치기로 함께 꾀하자 아라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날음(捺音)으로 하여금 이웃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게 하여 드디어 8국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는 큰 공을 세웠으나 왕손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그 공은 기록되지 않았다. 어느 사람이 물계자에게 말하기를 “자네의 공이 대단히 컸는데 기록되지 못하였으니 원망하는가?” 하였더니 말하기를 “어찌 원망하리요?” 하였다.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왕에게 아뢰지 않는가?” 하니 물계자가 ..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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