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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5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1) 평소 존경하는 블로그 주인장께서 이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권하셨다. 예전에 발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쉽게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성씨 중 하나인 "안동권씨安東權氏"에 얽힌 이야기이다. (미리 밝히자면, 난 안동권씨 친척이 없다. 지인은 몇 분 계시지만.) 1. 인터넷에서 흔히들 찾아보는 나ㅁ위키에선 "안동권씨"를 이렇게 설명한다. "안동 권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당시 고창古昌에서 별장을 지낸 태사공太師公 권행이다. 본래 신라의 왕성王姓인 경주 김씨였으며, 본명이 김행이다. 신라 추존 국왕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고, 김알지 계열 성씨이다." 이것이 오늘날 공인된 안동권씨의 출자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일.. 2023. 6. 19.
1930년, 양의洋醫의 한의漢醫 인식 하라는 일,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엉뚱한 데 관심을 뻗치는 것도 참 병은 병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이 없었던들 인류가 인류로 살아남았을까?각설하고, 요즘도 무슨 열매나 풀뿌리 같은 걸 홍보할 때 "허준 선생의 에 이르기를 이거는...."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많이 본다. 그렇게 뭐든지간에 을 끌어들여 근거를 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예컨대 어떤 신문기사에 인용되었다면, 기사 작성자가 을 인용함으로써 자기 주장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아가 이란 이러이러한 책이라는 걸 (적어도 그 기사의 작성자와 예상 독자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그런데 의외로, 미장원 잡지만큼이나 엄청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던 일제강점기 잡지에서 을 언급하는 경우.. 2023. 6. 19.
쉬 썩어 문드러지는 목판에 문헌은 사라지고 [매직아이?]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서 찍는 목판인쇄는 활자와 달리 한 번 만들어두면 계속 그것만 찍어낼 수 있다. 하지만 재료가 나무인지라 마모되고 상하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새로 판을 만들어 보충해야 하지만, 그때도 그게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귀찮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문드러진 목판을 그대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 어떻게 읽으셨을는지. *** Editor's Note *** 목판은 보통 판대기 하나에다 텍스트를 다 쑤셔박는다. 그것이 요새 개념으로는 1쪽 1페이지가 된다. 활자는 글자 하나씩 만들어 그 한 글자씩 텍스트 순서에 따라 틀에다 넣고 배열하고는 그걸로 찍어낸다. 글자의 가변성이라는 측면에서 금속활자가 훨씬 보폭이 크다. 목판은 문드러지면 판대기 하나를 새로 짜야 한다. 훼손된 부.. 2023. 6. 15.
잡지 <개벽開闢>을 읽기 전에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이 제주 안에 있어도 어지간한 문헌은 컴퓨터 모니터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직접 자료를 찾아보러 육지로 나가야만 하기도 합니다(꼭 필요한 자료인데 꼭 그거만 원문공개를 안해줘가지고...). 가려고 날을 잡아보는데 거 참 쉽지가 않네요. 어쨌건, 이제 정말 을 읽게 생겼습니다. 도대체 그 잡지가 어떤 잡지기에 내가 쓰려는 글(다시 말하지만 전 고려시대 전공자입니다)에 필요한 자료를 실었나 싶더군요. 이에 까페에 자리잡고 이 책을 폈습니다. 도대체 이란 무엇인가? 2023. 6. 11.
경성제국대학 개교를 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뿌우) 1924년 5월 2일, 칙령 103호로 가 반포 시행되며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이 개교했다. 1924년 5월 9일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 제1회 신입생 선서식이 거행되고, 이튿날 경성제국대학 예과 제1회 입학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인 12일 최초의 수업 시작, 곧 개강開講이 있었다. 그 다음날인 13일, 서울의 일본인 신문 에서는 1면의 거의 2/3을 할애해 경성제국대학 개설을 축하하는 광고를 실었다. 그런데 그 광고들을 보아하니 이들이 왜 대학 개설을 축하했는지 짐작이 간다. 남산 자락 혼마찌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서점은 "우와! 대학이 생겼으니 이제 대학 교재 수요가 생기렸다. 그리고 소설 같은 것도 좀 팔리겠지, 기왕이면 우리 가게에서 사가게 하자"겠고, 구두 가게와 모자 가게야 "크으!.. 2023. 6. 11.
장미와 대나무 라니 별 희한한 조합도 다 있다 싶지만, 그림으로 옮겨놓으니 제법 아취가 그럴싸하다. 계유년, 곧 1933년 어느 봄날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1897-1944)의 붓끝이 이 둘을 만나게 하였다. 채색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화려한 그림이 되지도 않고 먹만 썼다고 무조건 담담한 그림이 되지도 않는다. 채색을 써도 얼마든지 이처럼 맑고 담담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법이다.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일본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호라는 작가 자신의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였던들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 Editor's Note *** 저 이한복은 호를 호가 없다 해서 無號라 쓴 대목이 이채롭다. 그런 까닭에 무호는 자호自號일 것으로 본다. 덧붙여 전통 수묵화로 그렸을 법한 데다가 채색을 씌우고 더..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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