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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39

거북등껍데기를 고려왕조에 바친 탐라국 문종 7년(1053) 2월, 개경에 멀리 탐라에서 온 손님이 도착했다.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이의 이름이... 탐라국耽羅國 왕자 수운나殊雲那가 아들 배융교위陪戎校尉 고물古物 등을 보내어 우황牛黃·우각牛角·우피牛皮·나육螺肉·비자榧子·해조海藻·구갑龜甲 등 물품을 바치므로, 왕이 〈탐라국〉 왕자에게 중호장군中虎將軍을 제수除授하고 공복公服·은대銀帶·채단彩段·약물藥物을 하사하였다. - 권7, 세가7, 문종 7년 2월 고려시대에는 제주 소가 지금보다 더 유명했던 모양으로, 원 간섭기에는 탐라 소고기를 원나라 황제에게 꼬박꼬박 바칠 정도였다 한다. 전복과 비자, 미역이야 지금도 제주 명물로 유명하고, 거북이 등딱지도 제주가 섬인 걸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저러나 배융교위께서 얼마나 노안이었으면 이름마저.. 2023. 1. 21.
백운거사, 소성거사를 만나다 원효대사元曉大師라고 하면 주무시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득도했다는 일화(실제일 가능성은 적다고 하지만)나 개울에 발을 헛디뎌 이룩한 요석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할테지만... 원효라는 분을 그렇게만 평가하고 기억한다면 신라의, 나아가 한국 불교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그분의 사상을 논하려면 책 하나로도 모자랄테니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그분이 파계한 뒤에는 머리를 기르고 중생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그는 신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왕조가 바뀐 뒤에도 많은 이들의 큰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머리 기른 원효 스님의 초상을 개인적으로 모셨던 스님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의 술꾼 이규보 어른이 그 소성거사의 초상을 보고 글을 하나 올린 것이 있다. 내가 영聆 수좌首座 족.. 2023. 1. 7.
미산선생 휘호도 米山先生 揮毫圖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1809-1892)은 큰아들 허은(1834-1867)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미산'이란 호를 지어주고 정성껏 서화를 가르쳤었다. 하지만 그가 요절하자 실의에 빠진 소치는 다른 자식들에게는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넷째아들에게 그림재주가 있음을 알게되자, 소치는 '미산'이란 호를 그에게 다시 주고 그림을 가르쳤다. 그렇게 소치의 맥을 잇게 된 아들 미산(형과 구분하고자 小미산이라고도 하는)의 이름은 허형(1862-1938)이었다. 그는 일흔 넘게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고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도 했으며, 1928년에는 광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형은 그 자신의 예술로써 평가받기보다 아들 허건(1908-1987)과 허림(191.. 2022. 12. 31.
이규보 선생, 까만 토끼 해를 謹賀하다 1. 백운거사 생전의 계묘년은 1183년, 그의 나이 열여섯이다. 한창 오세재, 임춘 같은 선배들 따라다니며 술 얻어마시던 무렵이다. 그러니 이 그림처럼 장년의 나이로 묘사한 건 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2023년 계묘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못 그릴 일도 아니지 않을까. 2. 술 마시고 흥이 일면 백운거사도 그림을 좀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잘 그리지는 못했던지 속 시문이나 묘지명에서도 그림 솜씨 얘기 하나 없다. 그래서 족자 속 黑兎가 괴상한 건지도 모른다. 3. Cheers! 2022. 12. 30.
일호천금一壺千金 《갈관자鶡冠子》라는 책에 이르기를, 표주박은 먹을 수 없어 별 가치가 없어보이지만, 만약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될 때는 이것을 가지고 물 위에 뜰 수 있으므로 천금의 값이 나간다고 한다. 소지도인 강창원(1918~2019) 선생이 그 고사성어를 어느 날 종이에 옮겨 적었다. (2021. 12. 25) 2022. 12. 25.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 일본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적다 늘 머릿속에 넣어두고있는 주제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서화가 연구다. 그중에서도 난초로 당대에 제법 유명했던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호운 박주항 부자에 관해서는 꼭 논문을 써보겠다고 벼르고 자료를 모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글씨 한 폭을 만났다. 박주항이 벌연筏硯이라는 호를 쓰던 시절(1910~20년대?) 글씨인데, 어쩐지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글씨가 떠오르는 서풍書風이다. 쓰기는 제법 능숙하게 써 내려갔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한다. 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 어찌 우연이랴 豹死留皮豈偶然 물이 하늘과 잇닿은 미나토가와에 자취가 남았구나 湊川遺蹟水連天 인생은 유한하나 이름은 끝없으니 人生有限名無盡 구스노키 공의 진실된 충성 만고에 전하리라 楠子誠忠萬古傳 때..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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